조지프 스턴버그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이탈리아 포퓰리스트 정권
내년 대규모 적자 예산안 내놔…재정파탄 우려 다시 불러일으켜

伊 정부가 디폴트를 선언하면
이탈리아 국채를 잔뜩 쌓아논 프랑스·독일 은행들도 '시련'

빚 탕감하고 갚아주는 EU를 이탈리아가 떠나지는 않겠지만
다른나라로 'EU 회의론' 번져…유럽공동체 지키기 힘들 수도
이탈리아가 유로화 시스템을 붕괴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포퓰리스트 정권이 내놓은 내년 적자 예산안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 규모 3위국의 재정이 파탄에 이를 것이란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이탈리아의 재정 파탄은 유로존의 다른 국가들까지 나락에 빠뜨릴 게 분명하다. 이 같은 비극은 예상치 못한 이유로 벌어질 수 있다.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이탈리아 재정 상황은 좋지 않다. 동맹당과 오성운동의 연합 정권은 향후 몇 년간 세수를 초과해 지출하는 적자 예산 계획을 내놨다. 적자 예산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4%에 달한다. 게다가 이번 안은 이탈리아 GDP가 그들의 장밋빛 예상대로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전제로 짜였다. 경제성장률이 예상에 못 미치면 적자폭은 더 커진다. 당초 유럽연합(EU)이 승인하려고 했던 경제학자 출신 조반니 트리아 재정경제부 장관의 GDP 대비 1.6% 적자 예산과 비교하면 차이는 극명하다.

예산안 적자폭 0.8%포인트는 이탈리아를 외환위기의 문턱에 밀어넣을 수 있는 규모다. 예산안은 이탈리아가 GDP의 130%에 달하는 부채를 갚을 계획이 전혀 없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경제 규모가 큰 이탈리아가 위기를 맞으면 다른 유로존 국가들이 구원하기도 어렵다. 이탈리아 정부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면 이탈리아 국채를 잔뜩 보유한 프랑스와 독일 은행들도 무사할 수 없다. 최근 이탈리아의 부도 위험이 높게 평가되면서 국채 금리가 치솟아 독일 국채와의 금리 차이가 5년 만에 최대로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유로존의 위기가 단순한 숫자 때문에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 이탈리아는 지난 3월 총선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기 전에도 부채를 줄일 뾰족한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금융권이 예산안에 대해 과도하게 부정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불평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탈리아가 자발적으로 EU를 떠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돈 때문이다. 빚을 못 갚으면 탕감해주고 대신 갚아주기도 하는 EU를 떠날 유인은 크지 않다. 빚을 갚기 위한 정책을 쓰려고 EU를 떠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리스는 2015년 주민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유로존에 남아 있고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역시 구제금융에 따른 여러 가지 불이익을 참아왔다.

진짜 큰 위기는 정치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가 예산 주권을 놓고 브뤼셀의 EU집행위원회에 맞서 정치적 싸움을 벌인다면 이탈리아 내부는 물론 다른 나라들의 ‘EU 회의론’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이탈리아의 형편을 고려하면 독일에 적합하게 마련된 EU의 통화정책과 재정 규칙에 종속당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럼에도 이탈리아가 유로존 시스템에 남으려면 이를 감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EU 내에서 ‘이탈렉시트(이탈리아의 EU 탈퇴)’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예산안 갈등이 커진다면 각국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최근 EU 회의론자들은 감정에 호소하며 지지세를 넓히고 있다. EU 집행부의 난민 정책 등 터무니없이 이상적인 좌파 논리를 버리고 국가 차원의 민주적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탈리아가 EU에서 쫓겨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유로존의 진짜 미스터리는 그리스 같은 채무국들이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 같은 채권국들이 왜 계속 머물고 있는가이다. 지금까지 독일이 유로존을 지킨 것은 유럽공동체 보존을 위해 유로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여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결정 때문이었다. 독일 납세자들도 유로존에 비용을 대는 것은 ‘이상적인 가치를 지킨다’는 의미로 여겼다.

이탈리아의 두 리더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동맹 대표)와 루이지 디마이오 부총리(오성운동 대표)는 메르켈 총리가 여전히 호의를 베풀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주요국들이 EU체제를 지키려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EU의 재정 규칙을 무시하고 있지만 이는 큰 오산일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독일의 집권당이 패한 바이에른주 선거 이후 메르켈이 이끄는 연합정부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다. 기독민주당 등 집권당들 대신 유권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EU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회의를 이념으로 삼고 있다. 이들의 세력이 커진다면 독일이 하루아침에 유로존의 재정 위기 국가들을 내버려 두자는 쪽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원제=Italy Issues a Euro Dare to Germany

정리=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