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시범사업만 반복한 원격진료
'중증 장애인 우선 시행' 공론화에 부쳐
의료민영화 논란 피하고 관련산업 선도를

방문석 < 서울대 의대 교수·재활의학 >

원격의료와 자유무역지구 내 투자개방형 국제병원에 관한 논의가 10년 넘게 되풀이되고 있다. 아예 논의가 중단되지는 않고, 국가 주도의 연구도 간간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뚜렷하게 진행되는 것도 없다. 국민건강보험제도로 운영되는 국가 공공 의료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영리병원을 허용한다는 의미 때문에 이미 승인받은 제주 헬스케어타운 내 국제녹지병원도 제주도민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다른 지역의 투자개방형 국제병원 논의도 진전이 없을 듯하다.

지난 정부에서 논란 끝에 중단된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논의가 다시 시도되고 있다. 지난 정부 때와의 차이는 산업적 측면보다는 공공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2012년 중증 장애인을 위한 원격의료와 의료정보에 대한 연구를 국립재활원에서 기획했다가 국가기관이 의료민영화에 단초가 되는 연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국회의원들의 지적을 받고 철회한 적이 있다. 장애인을 위한 연구는 의료민영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당론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의원들의 말을 듣고는 연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도 공공성에 대한 이해가 지금 같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은 군인, 재소자, 도서벽지 주민 등을 대상으로 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한다고 하지만 의료민영화에 대한 논란은 여전한 것 같다. 산업계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인 한국이 앞서 있는 스마트 통신기술을 활용해 미래 성장산업인 이 분야를 국제적으로 선도해야 하는데, 이웃나라 일본에 많이 뒤처져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의사협회 등 반대 측에서는 경제적 이득이 별로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비대면 의료의 안전성과 대형병원 쏠림 등 의료전달체계 붕괴도 우려한다.

보건복지부가 예상한 원격의료로 혜택을 볼 수 있는 대상 중 초진부터 필요한 부류는 중증 장애인 비율이 절반 가까이로 가장 높다. 그렇다면 공공성이 있고 의료민영화 논란도 피할 수 있는 중증 재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범사업을 우선적으로 한다는 것을 공론화에 부치면 어떨까.
장애인건강법 제정과 이에 따른 재활병원 시범사업, 장애인 주치의 제도 시행도 장애인 원격의료 수요 필요성의 변수가 될 것이다. 장애인의 불필요한 입원 기간 단축, 가정과 지역사회 복귀 활성화와 복지부가 추진 중인 지역사회 돌봄 모두 그동안 소홀히해온 재가 중증 장애인의 수적 증가와 그들의 의료 및 돌봄 수요를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꾸준한 의학적 관리와 재활치료 유지가 필요한 중증 장애인을 위해서는 기존 원격진료 외에 다양한 형태의 원격진료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의사와 환자 외에도 방문 간호사, 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와 같은 의료기사, 사회복지사, 환자 가족, 활동 보조인과 의료진 간 처방과 협의 등 새로운 형태의 원격진료가 이뤄질 수 있다.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환자 상태의 실시간 평가와 영상 전송 등 더 자세한 의학적 정보 축적이 가능해져 의료기관 직접 방문 시의 정보에만 의존하는 진료에 비해 진료의 질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중증 장애인에게 시행하는 원격의료는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 우려하는 문제점도 비교적 적다. 이에 비해 재가 장애인이 받는 혜택은 훨씬 많고, 불필요하게 장기간 병원 생활을 하는 장애인의 빠른 지역사회 복귀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과 단점도 있을 수 있다. 이를 위해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게 좋을 것이다. 정부, 국회, 수요자, 관련 단체 각각의 의견을 소모적으로 듣고 논쟁하기보다는 수요자와 국민이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합의하고 동의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정책 시행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반대 측에서 우려하는 점을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에게 편리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편리한 것이 될 것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