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 없는 복지 확대 발표
작년까지는 '차별 복지' 당론 고수
아동수당 전계층에 30만원 '파격'
김병준 '脫국가주의' 노선과 충돌
정우택 "의총도 않고 당론 바꾸나"

당내 이념갈등 '부글부글'
태극기부대 수용 놓고 공방
좌우 오락가락 행보에 비판 목소리

문재인 정부의 주요 복지정책을 ‘세금 중독’이라고 맹비판했던 자유한국당이 돌연 ‘보편적 복지’로 정책 전환을 선언했다.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배격을 당론으로 고수하며 소득 수준별 ‘차등 복지’를 강조해온 보수정당의 ‘변신’에 당 내에서조차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당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강성 보수층을 끌어안을지를 놓고도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여론 눈치만 보는 모습을 보이자 “포퓰리즘 정당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저출산 문제에 한해 ‘변신은 무죄’?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사진)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소득 구분 없이 아동수당을 전 계층, 초등학교 6학년(만 12세)까지로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정기국회 때 정부·여당이 내놓은 아동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 정책을 ‘소득 상위 10% 계층을 제외한 만 6세 미만 아동’으로 묶어두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에서 180도 돌아섰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소득 상위 10% 가구를 아동수당에서 제외하는 데 들어간 행정비용은 한 해 1626억원에 달한다. 상위 소득자 배제 원칙을 철회해 달라는 정부와 여당의 요청에 한국당은 오히려 현행 10만원에서 ‘3년 내 30만원까지 인상하자’며 더 파격적인 안으로 화답했다. 김 원내대표는 저출산 정책에 대해 당이 보편적 복지로 전환한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봐도 무방하다”고 답했다. 이어 “옛날이야기만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개선해 나가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권은 김 원내대표의 ‘뜻밖의 발언’에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협의회에서 “야당의 제안을 높이 평가한다”며 “저출산은 국가 과제인 만큼 야당과 충분히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반색했다.

김 원내대표의 이 같은 변신은 예고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수당 확대’는 김 원내대표의 9월 초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꺼내든 ‘출산주도성장’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당시에도 ‘출산 시 즉시 2000만원 지급’과 같은 현금성 복지를 내세웠고, 이달 2일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론 흐름에 민감한 수도권 지역구(서울 강서을) 출신인 김 원내대표가 차기 선거를 겨냥해 당 지지율 제고에 나선 게 아니냐”고 분석했다.

◆예고 없는 정책 전환에 내부 ‘갈팡질팡’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회의원 총선거를 불과 1년6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당 지지율 제고를 위해 무리하게 정책 방향 전환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내에서조차 “내부 반발이 많은 정책”이라며 반대 기류가 강하다.

지난해 원내대표였던 정우택 의원은 “국민이 낸 세금을 보호해야 하는 야당의 역할이 아니다”고 김 원내대표를 정면 비판했다. 정 의원은 “아동수당 소득 상위 10% 배제는 당시 수차례 정책 의원총회를 거쳐 당론으로 확정한 것”이라며 “당론을 1년 만에 바꿀 거면 의원들에게 의총을 거쳐 먼저 의견을 물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작년 예산안 협상 당시 아동수당 등 정부 예산안을 ‘7대 퍼주기 예산’으로 규정하고 아동수당 소득 상위 10% 배제를 주장해 관철시킨 바 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내세우고 있는 ‘탈(脫)국가주의’ 노선과 엇박자가 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는 비대위원장 취임 후 먹방(먹는 방송) 규제 등의 정책을 예로 들어 국가 만능주의를 배격해 왔다. 국가 재원을 투입하는 출산장려책과는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김 위원장은 출산주도성장 정책 발표 당시 “(비대위 차원의) 논의가 없었다”며 “김 원내대표가 출산율 제고를 강조하기 위해 한 발언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라고 말해 크게 힘을 싣지 않았다.

한국당은 최근 당 지도부가 내놓은 ‘중도·보수 통합론’을 놓고도 명확한 견해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강성 보수층으로 대표되는 ‘태극기 부대’를 끌어안을 것인지, 배격할 것인지를 놓고도 갑론을박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한국당에 조직강화특위 위원 자격으로 합류한 전원책 변호사가 “태극기 부대도 품어야 한다”고 발언하자 김 위원장은 “모두를 한 그릇에 담자는 얘기가 아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 원내대표는 아동수당 확대 방침에 포퓰리즘 논란이 불붙자 “저출산 제고 정책에 한해서”라는 단서를 달며 진화하는 모양새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질 경우 한라산에 가는 건 자유지만, 국회에 와서 연설하려면 톈안먼기념관이나 국립묘지에서 우리 순국선열한테 먼저 참배해야 (한국당이) 국회 방문에 찬성할 수 있다”고 강경론을 제기했다. 출산 관련 정책에서만 복지를 늘리는 데 동의할 뿐 대(對)북한·일자리 정책에서는 보수 본연의 색을 뚜렷하게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한국당 한 중진의원은 “한국당이 정강·정책 변화, 지지층 다변화 등의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만큼 보수 가치를 훼손하는지를 놓고 치열한 내부 토론이 필요한데 당이 파열음 진화에만 힘쓸 뿐 너무 조용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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