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꺼지는 한국 車산업
(4) 줄도산 공포에 떠는 부품사들

직격탄 맞은 인천 남동공단
일감 줄어들자 직원 대부분 떠나
"퇴직금 챙겨주고 나니 빚만 쌓여
공장 내놔도 산다는 사람이 없다"

車산업 생태계 무너질라
완성차업체 저조한 판매 여파
상장 부품사 30% 상반기 적자
2,3차 협력사는 이미 폐업 위기

1년새 일자리 1만개 이상 사라져
'부품 대란'에 車산업 뿌리째 흔들

인천 남촌동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공장 담벼락에 ‘공장 경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공장은 모회사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 경매에 넘어갔다. /박종관 기자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자동차 엔진용 부품공장을 운영하는 문모 사장은 오전 7시 출근해 오후 9시 퇴근한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문 사장과 경비원을 포함해 5명. 사실상 폐업 상태다. 공장을 가동하지 않은 지는 두 달이 넘었다. 문 사장과 직원들의 업무는 쓰지 않는 기계가 녹슬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문 사장은 기존 거래처에 하루 한 번 전화를 걸어 “혹시 물량이 필요하지 않냐”고 묻지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싸늘하다.

공장에는 한때 80명 가까운 직원이 일했다. 직원 수는 작년 이맘때부터 줄기 시작했다. 젊은 직원들이 먼저 이탈했다. “월급을 줄여도 좋으니 일하게 해달라”던 나이 든 생산직 직원도 결국 회사를 떠나야 했다.

썰렁해진 부품공단

이웃한 다른 공장 사정도 비슷했다. 차 문을 제조하는 2차 협력업체인 이 공장의 직원은 1년 만에 70명에서 30명으로 줄었다. 주문받는 물량은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모 사장은 “공장을 겨우 돌리고 있지만 사실상 남는 게 하나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 공장의 연매출은 50억원이지만 인건비와 재료비, 임대료 등을 빼면 한 달에 200만원가량이 남는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유 사장은 최저임금을 밑도는 120만원 정도를 월급으로 가져간다. 그는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 공장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유 사장은 한때 공장을 팔 계획도 세웠지만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가격을 크게 낮춰 부른 이에게 넘길까 생각했지만 은행 빚을 갚고 직원들 퇴직금을 챙겨주고 나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고작 5000만원뿐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는 “내년 상반기까지만 버텨볼 생각”이라고 했다.

공장 밖 풍경은 더 을씨년스러웠다. 공단 곳곳에 ‘임대’와 ‘경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공장 문을 걸어 잠근 곳도 많았다. 한 부품업체 사장은 “은행에서 문전박대당한 지는 오래됐고, 2금융권에서도 대출을 거부하기 시작했다”며 “일부 업체 사장은 불법 사금융에 손을 벌리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남동공단 인근 선학동 먹자골목은 점심시간에도 한산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예전에는 공장 점퍼를 입고 단체 회식을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보였지만 그런 손님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적자 부품사 해마다 늘어

자동차 부품업계 종사자들은 한목소리로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고 말한다. 8000여 개에 달하는 2, 3차 협력업체는 이미 폐업 직전이다. 그나마 사정이 괜찮다던 1차 협력사도 흔들리고 있다.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인 리한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중견 부품사 다이나맥, 금문산업 등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상장 부품사 82곳 중 25곳이 올 상반기 적자를 냈다.

부품 업체의 경영난은 완성차 업체의 판매 부진 탓이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올 들어서는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가 결정타를 날렸다. 국내 완성차 업체를 따라 중국에 진출한 부품사들도 실적이 크게 나빠졌다. 국내 최대 부품사인 현대모비스는 올 1~3분기 중국에서 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376억원)과 비교하면 100분의 1로 줄었다.

2, 3차 협력사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1차 협력사에 “회사 문을 닫을 테니 금형 등 설비를 비싸게 인수해달라”고 협박하는 일도 많다는 전언이다. 2, 3차 협력사가 금형을 없애면 1차 협력사와 원청사 모두 생산라인을 멈춰야 한다.

부품업계 위기는 ‘일자리 대란’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자동차산업은 국내 제조업 일자리의 12%를 책임지고 있다. 국내 부품사가 직접 고용한 인력은 20만 명이 넘는다. 지난 1년간 고용인력이 1만 명 이상 줄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분석이다. 완성차업계에서 시작된 위기가 부품업계로 넘어왔다가 다시 완성차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2, 3차 협력업체가 줄도산해 완성차 업체가 양질의 부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자동차산업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인천=박종관/도병욱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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