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야기

연산 능력 탁월한 양자 컴퓨터

단위는 큐비트…0과 1 동시 존재
표현할 수 있는 상태 늘어난 만큼
연산 능력 기하급수적 향상

美·中, 1조씩 투입해 기술개발 경쟁
"상용화 땐 암호체계 무력화
글로벌 금융시스템 다시 짤 정도"

마이크로소프트가 테스트하고 있는 양자 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수십 년’을 ‘몇 분’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크리스타 스보르 시니어 매니저는 양자 컴퓨팅을 이렇게 정의한다.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100년 가까이 걸리는 소인수 분해 문제를 100초 만에 풀 수 있을 만큼 연산 능력이 탁월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양자 컴퓨터의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과학계가 기대하는 수준의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되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까지 다시 짜야 한다. 세계 표준인 250자리 암호 체계가 몇 분 만에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채굴’은 얘깃거리도 안 된다.

◆양자 컴퓨팅에 사활 건 각국 정부

각국 정부와 주요 글로벌 기업이 양자 컴퓨터 개발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2020년까지 양자 컴퓨터 개발 임무를 맡은 양자국가연구소 건설에 76억위안(1조2500억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내놨다. 유럽연합(EU) 역시 내년부터 10년 동안 양자 컴퓨팅 분야에 10억유로(1조3000억원)을 투자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미 2016년 양자 컴퓨터 초기모델을 개발해 일반에 공개한 IBM을 비롯해 구글, MS, 인텔 등이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상당하다. 미국 하원은 지난달 4년간 1조원 이상의 자금을 양자 컴퓨팅 부문에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양자이니셔티브(NQI)’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언론들은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의 양자 컴퓨팅 개발 경쟁을 ‘21세기 우주 레이스’라고 부른다. 미국과 옛소련이 달 탐사를 누가 먼저 하느냐를 놓고 경쟁을 벌인 1950~1960년대 경쟁 양상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특정 국가나 기업이 이 기술을 선점하면 글로벌 기술의 헤게모니 향방이 바뀐다는 함의도 담겨 있다.

양자 컴퓨팅의 기원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양자역학 법칙을 따르는 아주 작은 컴퓨터들’이라는 강연을 통해 양자 컴퓨팅의 개념을 정립했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선 서로 다른 상태가 중첩된 값이 존재한다. 무조건 0이 아니면 1의 값을 갖는 기존 컴퓨터와의 차이점이다. 양자 컴퓨팅의 최소 단위는 ‘큐비트’다. 0이나 1일 수도 있고 동시에 0이나 1 어느 쪽도 확정 지을 수 없는 상태일 수 있다. 개별 큐비트가 표현할 수 있는 상태가 늘어난 만큼 연산능력도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된다. 일반 컴퓨터보다 연산 속도가 빠른 이유다.

과학계가 양자 컴퓨터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존 컴퓨터의 발전이 한계에 봉착해서다. 인텔 창업주인 고든 무어는 1965년 제안한 ‘무어의 법칙’을 통해 반도체 트랜지스터 수가 미세화 공정에 힘입어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리로 통했던 무어의 법칙은 이제 ‘벽’에 부딪혔다. 반도체 공정이 10㎚(1㎚=10억분의 1m) 이하로 진화하면서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 작게 만드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이 과정에서 트랜지스터가 전자를 막아도 그냥 통과하는 ‘터널링 현상’이 나타난다.

◆오류 해결하려면 최소 10년 필요

양자 컴퓨터의 성능과 관련이 있는 큐비트 숫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IBM은 5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내놨고, 구글도 올해 3월 72큐비트 제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걸음마 단계’란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일단 양자역학 원리가 작동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녹록지 않다. 가장 널리 활용되는 초전도 방식은 우주 공간에 가까운 극저온, 무진동, 무소음 환경을 갖춰야 한다. 시스템 덩치가 커야 하고 이를 관리하기도 쉽지 않다.

큐비트가 연산을 지속하는 시간에 오류 없이 양자역학 원리가 작동하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도 문제다. 박성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은 “양자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는 시간이 짧으면 100만분의 1초, 길어봐야 수초”라고 지적했다.

이준구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큐비트 개수뿐만 아니라 양자 상태를 지속하는 시간도 늘려야 한다”며 “개수와 시간을 곱한 값인 ‘퀀텀 볼륨’이 실용화 수준으로 높아지려면 적어도 10년 정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이유 탓에 양자 컴퓨터가 불안정해 잦은 오류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물질 구조 시뮬레이션은 초기 양자 컴퓨터와 궁합이 잘 맞는 분야로 꼽힌다.

조영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은 “특정 물질의 분자 구조를 시뮬레이션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장비가 양자 컴퓨터”라며 “대략 이런 특성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하는 수준은 지금의 양자 컴퓨터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송형석/윤희은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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