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열 충남 천안 어룡농원 대표

20여년 다니던 건설사 그만두고
父 과수원 이으려 1년 농사 배워

한 그루당 年수확량 보장
SNS로 재배 과정 실시간 공유
기업·가족 등에 배나무 분양
年2000명 찾는 체험형 농장으로

20여 년간 건설회사에서 일한 이상열 씨는 2011년 고민에 빠졌다. 회사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위기에 몰렸다. 다른 회사로 옮길까, 자영업을 준비할까. 그가 결정한 건 귀농이었다. 농촌에서 자라긴 했지만 농사일은 잘 몰랐다. 퇴직금을 아내에게 건네고 1년 동안 귀농 교육을 찾아다녔다. 귀농 교육은 농촌에 적응하는 법을 알려줬다. 하지만 돈 버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이씨는 고민했다. 직장에서 익힌 것들을 농업에 적용할 순 없을까.

그는 아파트 분양팀장 출신이다. “비싼 아파트도 선분양했는데 농산물도 되지 않을까.” 고민의 결과는 배나무 분양이었다. 소비자가 나무 한 그루를 분양받으면 가을에 수확물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귀농 첫해 배나무 한 그루에 35만원의 분양비를 받고 200그루를 분양했다. 분양자에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배나무 상태를 부지런히 전했다. 7년이 지났다. 이씨가 운영하는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어룡농원은 연 2000명이 찾는 체험형 배 과수원이 됐다.

이상열 어룡농원 대표(사진)는 승계농이다. 아버지 소유의 과수원을 이어받았다. 다른 귀농인보다는 여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당시 배 수요가 크게 줄어들면서 배 농가의 수익이 급감했다. 유명한 배 산지인 천안의 어룡농원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판로 문제를 해결한 뒤 귀농해야겠고 생각했다. 1000시간이 넘는 귀농 교육을 받았다. 수원도시농부학교, 농촌진흥청 엘리트귀농대학 등. 대부분 농사기술만 가르쳤다.

배나무 분양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구상했다. 아파트 분양팀장으로 일하면서 기획과 홍보엔 자신있었다. 이 노하우를 농장 경영에 접목했다. 약 1300그루의 배나무 중 200그루를 분양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뒤 분양계약서 작성에 들어갔다. 수확량 보장 제도를 도입했다. 배나무 한 그루에 8상자를 1년 수확량으로 제시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5상자 이상은 보장하겠다고 했다. SNS를 통한 사이버 영농일지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어룡농원의 배나무를 분양받았다면 1년에 두 번은 농장에 가야 한다. 4월에 처음 초대를 받는다. 직접 인공수분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나무와 교감한다. 두 번째 초대는 가을이다. 분양받은 사람은 배를 직접 따고 포장까지 해야 한다. 분양받은 가족이 가져가는 건 보통 한두 상자. 나머지는 친척이나 지인에게 바로 선물할 수 있게 했다. 택배 운송장을 쓰는 것까지 이대표가 돕는다. 풍경을 즐기면서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도록 과수원 전망이 좋은 곳에 작은 집도 하나 지었다.

분양받은 배나무에 거는 팻말.

어룡농원엔 나무마다 팻말이 하나씩 걸려 있다. ‘미달아 건강하자’ ‘김순호 대학 기원 나무’ ‘현우네 무럭무럭’ 같은 것들이다. 팻말 옆에는 가족사진이 붙어 있다. 각 나무의 주인 사진이다. 동창회와 회사 모임에 분양한 나무도 있다. 서울 봉천초등학교 12회 졸업생 모임은 올해 세 그루나 분양받았다. 수확한 배는 동창회 밴드를 통해 팔고 수익금은 모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식이다.

회사 명의로 배나무 분양을 받기도 한다. “명절 같은 때 고객에게 선물을 보내는 회사들이 있잖아요. 그냥 백화점에서 사서 보내는 것보다 직접 분양받은 배나무 사진과 편지글, 수확한 배를 보내면 고객 만족도가 높습니다.”

이 대표는 스마트폰을 ‘제2의 농기계’, SNS를 ‘제2의 농장’이라고 부른다. 어룡농원은 네이버 밴드는 물론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SNS 관리를 실제 농장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제값을 받으려면 농산물 직거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직거래를 위한 소비자와의 소통 창구가 SNS라는 것이다.

그는 “작물을 가꾸듯 SNS를 가꾸라”고 했다. “직거래를 하려면 고객관리가 필수예요. 자신이 받는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수확되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귀찮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수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른 품목도 가능합니다. 양봉, 버섯, 장독대를 분양할 수도 있고요. 핵심은 소비자와의 직거래, 즉 소통입니다.”

천안=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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