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없는 발표에 논란 증폭…시신은 어디에? '현지 협력자' 인수설
'실세' 왕세자 승인없이 가능한가…귀국 협의하러 정보요원 대거 파견?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자국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된 사실을 20일(현지시간) 인정했지만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카슈끄지는 지난 2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 안에서 용의자들과 대화를 하다가 우발적인 주먹다짐으로 이어졌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게 사우디 검찰의 설명이다.

그러나 상황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가 하나도 제시되지 않아 발표의 신뢰성을 낮추고 있다.

이는 사우디에 우호적인 미국과 일부 아랍국가만 사우디 당국의 발표에 호응할 뿐, 국제기구와 유럽 주요 국가들이 여전히 실체적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사우디 '실세' 빈살만 왕세자 관여했나…"승인 없인 결코 불가능" 시각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발표에서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는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가장 큰 의문으로 꼽았다.

사우디 정보기관, 언론 통제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체제 재편을 이끄는 그가 이번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미국, 터키 당국도 이처럼 정교한 작전이 빈 살만 왕세자가 모른 채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전직 미국 외교관은 "이번 일은 MBS(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영문 약칭) 승인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번 작전에는 사우디 왕실 기업 소속의 항공기 2대와 빈 살만 왕세자와 가까운 15명의 용의자가 동원됐다.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고 20일 해임된 왕세자 보좌관 사우디 알-카타니는 지난해 소셜미디어에 "내가 지시 없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겠느냐. 나는 왕과 왕세자의 고용인으로서 신뢰할 만한 명령 수행자"라는 메시지를 올린 바 있다.

◇ '토막설' 카슈끄지 시신은 어딨나…현지 협력자에 넘겼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문은 카슈끄지의 시신이 어디에 있느냐는 점이다.

사우디 당국은 총영사관 안에서 카슈끄지가 살해된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의 시신이 어떻게 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사건 초반 시신 일부가 터키 국외로 반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터키 당국은 최근 이스탄불 교외지역에서 수색작업을 벌였다.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 미 언론은 각각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사우디 파견팀이 카슈끄지의 시신을 '현지 협력자'에게 처리하라고 넘겼다고 전했다.

사우디 왕궁과 가까운 한 소식통은 CNN에 카슈끄지 시신의 소재는 사우디 당국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카슈끄지가 살해된 후 그의 시신은 현지 협력자에게 건네졌고, 이스탄불 총영사관에는 없다고 덧붙였다.

CNN은 이 주장의 진위는 확인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협력자'라는 새로운 인물을 출연시킨 데에는 '토막설'이 나오고 있는 카슈끄지 시신 상태에 대한 사우디 측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

카슈끄지의 지인들은 장례라도 치를 수 있게 그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의 친구로 터키-아랍 미디어 연맹 회장인 투란 키슬락시는 사우디 검찰의 발표 후 이스탄불 총영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례를 치를 수 있게 자말을 돌려달라"며 "그를 생각하는 모든 사람과 세계 지도자들은 카슈끄지의 장례식을 위해 이스탄불로 모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카슈끄지가 귀국 원해서 정보요원들이 만났다?…시신해부 전문가는 왜 갔나

아울러 NYT는 이번 사건의 용의자들이 귀국에 관심을 보이던 카슈끄지를 만나기 위해 터키로 건너갔다는 사우디 측 설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가 당시 사우디 정부의 결혼승인 서류를 얻으려 총영사관에 간 것이라고 카슈끄지의 터키인 약혼녀 하티제 젱기즈가 밝힌 것과 상치된다.

카슈끄지 스스로도 친구들에게 자신의 귀국을 설득하던 당국의 꾐에 의구심을 토로한 바 있다.

그의 지인인 아랍계 미국 정치가 칼리드 살푸리는 그러한 사우디 당국의 움직임에 "카슈끄지가 '농담하느냐. 그들을 하나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 적 있다"고 전했다.

단지 그의 자발적 귀국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라면 왜 터키에 많은 사람을 보냈느냐는 점도 의문이다.

사우디 당국은 카슈끄지 사망에 관여한 18명을 구금한 상태라고 밝혔다.

앞서 터키 정부는 카슈끄지 실종 직전 총영사관에 들어갔던 사우디 국적자 15명의 신원을 공개했다.

더욱이 이들 중에는 사우디 정보기관원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터키 당국은 이중 최소 12명이 사우디 정보기관과 연계돼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들 용의자 중에 살라 무함마드 알투바이지는 시신해부 전문가이자 법의학자로 알려졌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브루스 리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범행 증거를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법의학 전문가가 필요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이 법의학 전문가는 사우디 범죄과학수사위원회를 이끌고 있고, 사우디 내무부와 왕립의과대학에서 고위직을 겸하고 있어 왕실 최상위층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서방의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 용의자 신원 왜 공개 안 하나…카슈끄지 혼자 15명과 싸웠다?

사우디가 체포한 18명에 터키 당국이 용의자라고 공개한 사우디 정보기관원, 왕실 경호원 등 15명이 포함돼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방송은 터키가 신원을 공개한 이들이 평범한 일반 사우디 관광객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었다.

물리적 충돌을 의미하는 '몸싸움, 또는 주먹다짐' 설명 역시 카슈끄지 홀로 15명이나 되는 인원을 실제 대적했겠느냐는 의문을 따라붙게 한다.

터키 당국은 카슈끄지가 총영사관 안에서 고문을 당했고, 계획적으로 살해됐음을 추정케 하는 내용이 담긴 오디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NYT와 WP는 또 사우디의 발표가 이처럼 오래 걸린 데 대해 의문을 표했다.

실종 18일이나 지나서야 사우디가 카슈끄지 살해 사실을 밝힌 자체가 수상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터키 당국이 카슈끄지 피살 의혹을 제기하고 사우디 최고위층이 조사를 지시하고 나서야 터키에 파견됐던 팀이 곤경에 빠질 것을 우려해 뒤늦게 사건 은폐에 나섰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오타와대학의 사우디 전문가 토머스 쥐노 교수는 트위터에 "사우디의 부실한 행정능력을 노출했다"며 "일을 이처럼 망치기도 힘들다"는 촌평을 남겼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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