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랑스선 한국어 많이 배워
양국 기업·문화 교류 점차 늘 것"

한국음식 즐겨 먹는 페논 대사
열정과 옛 정취가 느껴지는 서울
가족과 정겨운 광장시장 자주 들러

지방출장 가면 지역 먹거리 꼭 맛봐
양평 지평막걸리·전주 궁중음식에 '푹'
군산의 삭힌 홍어 가장 흥미로웠죠

한국은 프랑스의 중요한 파트너
마크롱의 거침없는 親기업 행보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 이미지 바꿔

파리 스타트업 시설에 네이버 참여
삼성 AI연구센터·SPC 등 진출 활발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국에서 대사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엘리트 관료 코스를 걸어온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에게 “앞으로 더 중요한 일을 맡는 것 아니냐”며 다소 짓궂게 묻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파리정치학교와 국립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 비서실에서 외교보좌관을 지낸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2015년 9월 한국에 부임해 3년이 넘었다. 지난 4일 점심에 만난 그는 그러면서 “좋아하는 한국에 내년에도 머무르는 것으로 최근 결정됐다”고 소식을 전했다.

페논 대사는 인터뷰를 요청하자 곧바로 서울 서대문구 합동 주한 프랑스대사관저 인근 프랑스 음식점 ‘르 셰프 블루’를 추천했다.

“한국에서 보통 프랑스 음식이라고 하면 비싸고 고급스러운 식당을 떠올리는데 실제론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이 있습니다. 이 식당은 그런 대중적인 프랑스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 초대했습니다.”

가족과 광장시장 찾고 지평막걸리도 마시는 대사

르 셰프 블루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로랭 달레 총괄셰프가 부인 이미령 대표와 함께 운영한다. 달레 셰프는 대사관에서 페논 대사 가족의 식사를 비롯해 대사관 만찬, 칵테일 리셉션 등 행사 때마다 요리를 책임지고 있다. 르 셰프 블루의 음식은 주로 부주방장이 조리하지만 달레 셰프도 틈틈이 식당에 들러 챙긴다. 페논 대사는 주방에 있던 달레 셰프를 보고 익숙한 듯 손을 들어 인사했다.

식전주로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지역의 스파클링 와인이 나왔다. 이어 노란 빛깔의 토마토와 당근을 넣어 만든 수프가 테이블에 놓였다. 프랑스는 식문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미식의 나라’인 만큼 음식 이야기가 이어졌다.

페논 대사에게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음식을 묻자 그는 ‘부야베스’라고 답했다. 부야베스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 전통 음식으로 지중해의 생선과 채소,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향신료를 넣고 끓인 스튜 요리다. “프로방스 출신인 제겐 ‘소울 푸드’입니다. 크루트(바삭하게 구운 빵조각)를 부야베스 국물에 적셔 먹으면 일품이죠.”

페논 대사는 한국 음식도 좋아한다고 했다. 서울에선 가족과 함께 종로 광장시장에 자주 들르고 한 달에 한두 번 지방 출장을 갈 때면 지역 음식을 맛본다고 했다. 그는 “최근엔 경기 양평군 지평리 전투기념관을 방문했는데 인근에 막걸리 양조장이 있어 지평막걸리를 마셔봤다”고 자랑했다. “전주에선 궁중음식을 먹었고, 제주에선 전복 요리, 군산에선 삭힌 홍어도 접했습니다. 삭힌 홍어는 향이 강했지만 프랑스 사람들도 치즈 같은 발효 음식을 많이 먹는 만큼 흥미로웠습니다.”

메인 메뉴로 코코뱅(coq au vin)이 감자 퓌레, 각종 구운 채소 등과 함께 나왔다. 코코뱅은 프랑스어로 ‘와인에 잠긴 수탉’을 뜻한다. 냄비에 닭고기와 각종 채소를 썰어 넣은 뒤 와인을 붓고 장시간 졸여 포도주 향이 스며들도록 한 음식이다. 얼핏 한국의 닭볶음탕이나 안동찜닭과 비슷하다.

코코뱅은 프랑스 부르봉 왕조 시절 백성들의 가난한 생활을 본 앙리 4세가 ‘모든 사람이 일요일엔 닭을 먹을 수 있게 하라’고 명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수탉은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이고 코코뱅은 프랑스의 가장 대중적인 음식 중 하나다.

코코뱅과 곁들일 레드 와인으로 프로방스 지역의 가르노드 와인이 나오자 페논 대사가 “상테(Sante)!”라며 건배를 청했다. 와인이 나온 김에 프랑스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코토 덱스 지역의 레드 와인을 추천합니다. 식사와도 잘 어울리지요.”

“프랑스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바뀌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개혁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크롱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 국영철도(SNCF) 개편, 공무원 감원, 법인세율 인하, 실업수당 개편 등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 중이다. 한국에선 마크롱 정부의 개혁에 관심이 많은 데 비해 정작 프랑스에선 마크롱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페논 대사에게 개혁 반대 여론이 높은데도 성공할 것으로 보는지 물었다.

페논 대사는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된 이유는 ‘개혁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국민이 그것을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는 총선에서 의회 과반을 확보한 만큼 개혁 정책을 펼칠 수 있고 개혁은 임기 동안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혁을 한다는 건 항상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래서 국민에게 설명을 많이 해야 합니다. 국민은 변화가 빨리 일어나길 바라지만 구조개혁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참을성이 필요하죠. 마크롱 대통령은 개혁을 통해 장기적으로 공공에 어떤 이익이 돌아가는지 꾸준히 설명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1년 반 만에 그전까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프랑스를 빠르게 바꿔놓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베르사유궁에 글로벌 기업인들을 초대하는 등 거침없는 ‘친기업’ 행보를 보이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하자 페논 대사는 “그 덕에 해외 기업들의 투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기업인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인도 자주 만나면서 프랑스가 얼마나 기업하기 매력적인 나라인지 홍보하고, 기업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으려 합니다.”
페논 대사는 한국의 대(對)프랑스 투자도 다방면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파리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육성 시설인 스타시옹F에는 미국 페이스북 다음으로 한국의 네이버가 큰 부스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파리에 인공지능(AI) 연구센터를 설립했고 SPC그룹도 노르망디 지역에 빵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죠. 부동산 투자도 크게 늘어 일드프랑스(파리 수도권) 지역에선 지난해 이뤄진 투자 중 6%를 한국인이 차지했습니다.”

“서울은 현대적이면서 골목길 정취도 느낄 수 있는 도시”

메인 메뉴를 다 먹자 첫 번째 디저트로 세 종류의 프랑스 치즈가 나왔다. 에멘탈, 카망베르, 에푸아스 치즈였다. 특히 부르고뉴 지역에서 생산되는 에푸아스 치즈는 진하고 강렬한 향미를 뿜어냈다.

페논 대사는 부인, 네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열일곱 살인 큰아들과 딸 셋이 있는데 위로 세 아이는 서울 서래마을 프랑스학교에 다니고 막내딸은 대사관 근처 한국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막내는 한국말도 할 줄 알죠. 식사 중에 ‘맛있어요’라며 한국말을 하기도 합니다.”

가족 모두가 서울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서울은 현대적이면서 안전한 도시입니다. 어떤 동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오래된 정취를 느낄 수 있고 한국인의 정신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지요. 열정적인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서울이란 도시도 활발하고 많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라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마지막 디저트로는 크렘 브륄레와 타르트 타탕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크렘 브륄레는 차가운 크림 커스터드 위에 유리처럼 얇고 파삭한 캐러멜 토핑을 얹어 내는 프랑스 대표 디저트다. 타르트 타탕은 사과 슬라이스에 버터와 설탕을 뿌리고 반죽을 덧씌워 오븐에 구운 사과 타르트다. 페논 대사는 “달레 셰프의 타르트 타탕은 최고”라고 추천했다.

그는 대사로서 한·프랑스 관계를 더 굳건히 하기 위해 교육 분야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2016년엔 프랑스에 유학하고 돌아온 이들을 위한 네트워크 모임 ‘프랑스 알룸니(France Alumni)’를 만들었다. 프랑스에서 학위를 취득한 청년들과 기업을 연결해 구직을 돕는 역할을 하다 보니 가입자가 700명을 넘어섰다. 한국과 프랑스 스타트업 커뮤니티인 ‘프렌치 테크 서울’도 조성해 양국 기업인의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대사관에선 프랑스 문화를 알리기 위해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프렌치 캐스트’를 개설해 영상을 매주 올리고 있다.

페논 대사는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10년 전 파리에 한국 식당이 10개 있었다면 지금은 100개도 넘습니다. 한국어는 최근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아시아권 언어가 됐습니다. 많은 개발도상국이 모델로 삼고 싶어 하는 나라인 한국을 프랑스도 중요한 파트너로 여기고 있습니다.”

■악력

△1968년 프랑스 출생
△파리정치학교(시앙스포)·국립행정대학원 졸업
△1997년 외교부 북아프리카중동국
△2000년 외교부 외교정책·공동안보국
△2001년 주EU 프랑스대표부 1등 서기관
△2002년 주EU 정치안보위원회 프랑스대표부 차석
△2005년 주영국 대사관 2등 참사관
△2007년 외교부 정책안보국 유엔·국제기구·인권·프랑코포니과 과장
△2010년 외교부 EU국 역외관계담당관
△2012년 대통령 비서실 외교보좌관
△2015년 9월 주한 프랑스대사 부임


■주한 프랑스대사관, 6·25 참전 사진집 발간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올해 6·25전쟁 발발 68주년을 맞아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한 프랑스군과 그들이 싸웠던 전적지들을 소개하는 두 권의 사진집을 발간했다. 6·25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은 모두 3421명으로 이 중 262명이 전사했고 7명은 실종됐다. 부상자도 1008명에 달했다. 사진집에는 프랑스군이 치열하게 싸운 경기 양평 지평리 전투와 쌍터널 전투, 강원 양구 단장의능선 전투 등의 전장을 포함해 6·25전쟁 3년 동안 촬영한 미공개 사진들이 실려 있다.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는 “한국과 프랑스는 1886년 공식 수교를 맺은 오랜 우방국으로 ‘함께 흘린 피’로 맺어진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사진집 발간 배경을 설명했다.

■파비앙 페논 대사의 단골집 르 셰프 블루
대사관 총괄셰프가 운영하는 佛가정식 전문점


‘르 셰프 블루’는 주한 프랑스대사관 총괄셰프를 맡고 있는 로랭 달레 씨와 한국인 부인 이미령 대표가 운영하는 프랑스 음식점이다. 프랑스 음식하면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즐기는 값비싼 요리를 떠올리지만 이곳은 프랑스인들이 즐겨 먹는 가정식을 내놓는다.

달레 셰프는 미국 뉴욕 ICC요리학교 출신이다. 다니던 통신회사를 그만두고 요리사로 직업을 바꿨다. 미국 뉴욕 주재 프랑스영사관 수셰프(Sous-Chef·부주방장)로 일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2013년 서울 방배동에 르 셰프 블루를 열고 3년간 운영하다가 주변 추천으로 대사관 총괄셰프를 맡게 됐다. 2016년 9월부터는 아예 서울 서대문구 합동 주한 프랑스대사관 옆으로 식당을 옮겼다.

메뉴는 매일 다르다. 좋은 재료가 들어오면 그날에 맞는 메뉴를 선정해 식당 문 앞 칠판에 적어 놓는다. 점심엔 3만원·5만원 코스를, 저녁은 10만원·12만원·15만원 코스 요리를 낸다. 저녁 시간엔 하루 한 팀(최소 6명 이상)만 예약제로 받는다.

설지연/김형규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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