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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협상' '명당' 피의 대결…남은 것은 상처 뿐

/사진=영화 '안시성', '명당', '협상', '물괴' 포스터

영화 관계자들 모두 입을 모은 다시 없을 치열한 대결이었다. 그리고 상처만 남았다.

지난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한국 영화 '안시성', '협상', '명당'이 동시에 개봉했다. 한 주 앞서 '물괴'가 개봉한 것까지 고려하면 추석 황금연휴 대목을 겨냥한 작품이 4개나 쏟아진 것.

4개 작품 모두 순 제작비만 적게는 100억원, 많게는 185억 원이 투입된 대작들이었다. 보통 마케팅 등 홍보 비용으로 40억~50억 원 정도 소요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총 제작비는 더욱 규모가 커진다.

하지만 개봉 후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성적표는 초라하다. 11일까지 집계된 바에 따르면 '안시성'만 순익분기점인 560만 명에 근접한 528만 명을 모았을 뿐이다. '안시성'은 해외, IPTV 판매 등을 통해 순익분기점을 훌쩍 넘길 것으로 관측되지만 나머지 작품들의 상황은 비극적이다.

순제작비 100억 원으로 순익분기점이 300만 명이었던 '명당', '협상' 모두 각각 207만 명, 195만 명을 모으는데 그치고 극장가에서 자취를 감춰가는 분위기다. '암수살인', '베놈' 등 신작들의 공세 속에 '안시성'만 박스오피스 5위권에 이름을 올릴 뿐, '명당', '협상' 모두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일일 상영 스크린수도 두자릿수로 떨어졌다.

가장 먼저 개봉했지만 관객들의 혹평을 면치 못했던 '물괴'는 순익분기점 320만 명의 4분의 1도 안 되는 72만 명을 동원하는데 그치고 쓸쓸히 퇴장했다. '물괴'의 흥행참패가 '안시성', '명당', '협상'의 흥행을 견인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두고 영화계에선 "예고된 비극"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우리가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만과 "이번 시즌을 놓치지 않겠다"는 욕심이 부른 재앙이라는 것.

최근 몇 년간 추석 시즌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를 잇는 '대목'으로 부상했다. 영화 '광해'가 2012년 추석 시즌에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추석=사극'이란 공식을 만들었다. 이후 영화 '관상'(2013년) 910만 명, '사도'(2015년) 625만 명, '밀정'(2016년) 750만 명, '범죄도시'(2017년) 688만 명 등 해마다 흥행작이 나왔다. '광해' 이후 지난 6년 동안 추석 개봉작 중 500만 관객을 모으지 못한 작품은 2014년 '타짜-신의 손'의 402만 명이 유일하다.

특히 올해는 추석에 개천절, 한글날까지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로 일찌감치 치열한 경쟁이 점쳐졌고, "어느 누구도 한국영화 간의 대결을 포기하거나 개봉일을 조정하려 하지 않았다"는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발언이다.

여기에 이전의 흥행 코드를 답습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추석 시즌엔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사극이 강세를 보였던 만큼 올 추석엔 3편의 사극이 맞붙었다. '협상'을 제외하곤 '안시성', '명당', '물괴' 모두 적절한 볼거리, 유명 배우, 약간의 유머를 가미한 사극이었다.

이는 관객수 저하로 이어졌다. 12일 기준으로 추석 시즌 4개 영화 누적 관객수는 1000만 명 정도. 지난해 추석 시즌 개봉했던 '범죄도시', '아이 캔 스피크', '남한산성' 등의 관객수 총합이 1300만 명에 달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눈에 띄게 감소했다.

김민정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3분기 국내 영화 관람객수는 전년동기대비 4.5% 증가하고, 티켓가격 인상으로 박스오피스 매출액은 11.5% 증가했지만, 작년 3분기는 역성장을 기록했던 시기이고 올해 9월에는 추석연휴까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성장률은 당사 예상치를 하회했다"고 극장 시장 상황을 분석했다.

이동륜 KB증권 연구원도 "국내 박스오피스 관객수 증가세는 제한적인 가운데 순제작비 100억 원 이상 국산 대작들의 개봉이 집중되면서 주요 배급사들의 손익 분기점 도달이 쉽지 않아 졌다"며 "사실상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안시성'만 유일하게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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