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 법무부 장관 >

지난 6월 세계 5위 연기금 네덜란드공적연금(ABP)이 한국 굴지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팜유 농장을 운영하던 이 회사가 열대림을 파괴해 원주민의 생활환경을 악화시키고 토지 분쟁에 얽혔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앞서 노르웨이 정부연기금 역시 환경파괴를 이유로 이 회사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국내 모 항공사 회장 가족은 직원들을 상대로 한 폭언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여기에 회장 일가의 범법행위 의혹까지 불거져 관련 회사 면허가 취소될 위험에 빠졌다. 비록 면허 취소는 면했지만 국토교통부가 ‘갑질’ 재발방지 대책 이행 전까지 신규 노선 취항 등을 불허하기로 해 향후 경영상 어려움은 불가피해 보인다.

위 사례들은 기업이 이윤 창출을 위해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과 함께 ‘인권경영’의 부재가 기업에 중대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사회에서는 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구제하는 내용의 기업 책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 왔다. 대표적으로 2011년 6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채택한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이 있다. 이행지침은 기업이 ‘인권존중책임’을 진다고 선언하고,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주의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한다. 최근 프랑스는 이 지침의 내용을 담아 ‘기업의 인권 주의의무법(duty of vigilance law)’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 기업도 인권존중책임이 더 이상 추상적·도의적 개념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의 인권 존중 여부가 글로벌 투자자 유치 조건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업이미지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이윤 창출을 위해 인권경영 시스템을 갖출 유인이 생겨난 것이다.

법무부는 ‘기업과 인권’ 관련 국제규범을 널리 알리고 국내 환경에 맞는 인권경영 지원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 ‘기업과 인권’ 장을 신설한 것이 한 예다. 작년 12월에는 ‘기업과 인권’과 국내 기업법제를 주제로 선진법제포럼을 열었고, 지난 8월에는 각계 인사를 초청해 기업과 인권 규범의 국내 도입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듣기도 했다.

최근 GS칼텍스는 인권경영체계 수립 방침을 담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 LG전자는 직원의 행복추구권을 명시한 ‘글로벌 노동방침’을 제정했다. 공기업도 인권경영헌장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기업이 인권경영의 길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