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식 < 혜원의료재단 세종병원 이사장 pjsheart@sejongh.co.kr >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있다. 이 법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한 일화로부터 유래했다. 한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뺏기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다. 사회 지도층이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해 돕지 않고 지나쳤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정성껏 돌보고 자신의 돈까지 내줬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돕지 않으면 벌한다는 법이다. 선진국에서는 제정된 지 오래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응급환자를 처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해 면책 또는 감면해 준다는 내용의 법이 이 이름으로 제정됐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것을 벌하는 법은 아직 없다.

몇 년 전 택시 운전기사가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었지만 승객들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다. 승객들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짐만 빼 다른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이 사건이 시발점이 돼 우리나라에서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 법은 제정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서로 돕는 건 법이 없더라도 함께 사는 사회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도움을 주는 행위의 이면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만약 도와주는 과정에서 대상에게 의도하지 않은 피해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도와주지 않았을 때 발생할 피해와 도와주는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건지는 응급환자 비율은 10~20%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 법 체계에서는 사망에 대해 면책이 아니라 감면만 가능하다.

얼마 전 한의원에서 봉침을 맞고 쇼크 상태에 빠진 환자를 돕기 위해 심폐소생술에 참여했던 가정의학과 의사가 피소됐다는 기사를 봤다. 빠른 조치를 하지 않아 환자가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이유였다.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도, 자신이 근무하는 의료기관의 환자도 아니었다. 의사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선의로 한 행동이었다. 이런 사례가 나오면서 우리 사회가 더 메마르고 각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법이 최종적으로는 이 의사에게 죄를 묻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피소 그 자체만으로도 당사자와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다른 사람을 돕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우리 사회가 ‘선한 사마리아인’을 다른 사람의 위험한 상황에 무관심한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선의로 남을 돕는 의로운 사람들에게 더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우리 주변이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채워질 것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