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조은영의 '무브무브' (4) 지중해의 작은 섬: 몰타 공화국의 고조섬

거인이 만든 신전 '주간티아'…
새로운 윈도 '위에드 일미엘라'
다시 가도, 여전히 신비로운 고조섬

몰타의 명물이었던 아주르 윈도는 사라졌지만 고조섬 해변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해변 풍광으로 여전히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작은 사진은 무너지기 전 아주르 윈도.

아듀! 아주르 윈도!(Adieu! Azure Window)

다시 갔습니다. 그 섬에! 존재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러 간 길이었지만 상실감만 들었다면 이렇게 글을 쓰진 않았을 겁니다. 지중해의 작은 나라 몰타공화국의 고조섬엔 더 이상 아주르 윈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채워진 건 그래도 고조는 위풍당당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거기에 그렇게 있을 거라는 겁니다.

고조섬=글: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사진: 무브매거진, 셔터스톡

사라진 고조섬의 상징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울렸다. “언니! 아주르 윈도가 무너졌대. 이게 웬일이래? 우리가 그때 그걸 본 건 정말 행운이었지 말이야.” 잠이 번쩍 깼다. 모바일로 뉴스를 확인했다. 지중해의 작은 섬, 들어도 보지 못한 생소한 고조란 섬에 있는 큰 돌덩이 하나가 무너진 것은 대한민국에선 큰 뉴스도 아니었지만 우리에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큰 사건이었다.

컴퓨터를 켜고 지난해의 몰타 사진 폴더를 열었다. 아주르 윈도를 앞에 두고 앉아 노을 지는 바다를 한참이나 지켜보았더랬다. 수줍은 뒷모습, 부끄러운 미소의 앞모습! 맙소사! 아주르 윈도를 배경으로 100장도 넘는 셔터를 눌렀군.

고조섬의 상징이자 절경인 아주르 윈도는 수천 년의 바람과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대작이었다. 거대한 암석 사이로 보이는 파란 액자 같은 풍경 때문에 ‘파란 창’, 즉 ‘아주르 윈도’라 불렸고 ‘풍화 작용으로 근 미래에 무너질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래도 그 시간이 이리 빨리 올 줄이야. 내 눈으로 아주르 윈도를 본 것만으로는 도저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2017년 3월, 그렇게 아주르 윈도는 순식간에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고지탄이 사는 개성 있는 섬, 고조

아주르 윈도가 무너진 뒤 딱 1년, 올봄 다시 고조 섬에 가게 됐다.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기분, 더 이상 내게 고조섬이 무슨 의미일까? 아주르 윈도가 없는 고조는 무슨 볼거리가 더 있을까? 내가 잠시 잊은 것이 있었다. 여행이 예술인 이유는 같은 장소에 100번을 가도 갈 때마다 다르다는 것, 아무리 익숙하다 해도 생소한 것이 있고 거기서 또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다. 고조섬은 몰타섬과는 또 다른 자연과 분위기와 문화를 가진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이었다.

고조섬, 현지인들은 아우데시라고 부르는 이 작은 섬은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공화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본 섬인 몰타섬의 서북쪽에 있다. 고조섬은 과거의 몰타라고 불릴 정도로 느리고 느린 섬이다. 면적은 67㎢, 딱 성남시 분당구만한 곳에 분당 인구와 비슷한 3만10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고조섬의 중심 도시는 빅토리아다. 수천 년의 역사와 평화로운 자연이 숨 쉬는 곳, 몰타섬과 고조섬은 가까이 있지만 언어와 음식, 문화에서 두 섬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몰타인들을 몰티즈(Maltese)라고 부르는 가운데 고조섬 사람들을 고지탄(Gozitan)으로 구별해서 부르는 것만 봐도 고조섬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급스러운 매력의 고조 레이스

고조섬을 자유여행으로 둘러보긴 쉽지 않다. 본 섬인 몰타섬에서 고조섬 터미널까지는 페리로 25분 거리인데 보통은 몰타섬에서 출발하는 원데이 고조섬 투어를 신청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그런데 고조섬 원데이 투어는 정해진 코스를 바쁘게 다닌 후 해가 지기 전 다시 몰타섬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라 아무래도 겉핥기식일 수밖에 없다.
페리에서 내리자마자 발견한 레이스 상점이 눈길을 끌었다. 주인아저씨는 몰타 레이스와 고조 레이스를 비교해서 보여주며 고조 레이스가 훨씬 고급스럽다고 몇 번을 강조한다. 고지탄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마리아의 기적이 펼쳐진 타피누 성당

고고학박물관이 있는 ‘더 시타델’

가장 먼저 빅토리아의 요새 더 시타델에 들렀다. 지금은 아름다운 고조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지만 1551년엔 해적 침략 당시 요새에 숨어 있던 많은 이들을 납치했던 비극적인 역사를 품고 있다. 더 시타델에 오르니 고조섬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초록색 들판, 선인장이 엉켜 있는 황량한 언덕, 레몬색으로 빛나는 라임스톤(석회암) 돌담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둥근 성당 지붕도 사랑스러웠다. 성당은 타피누(Ta’Pinu), ‘기적의 교회’라 불리는 곳이다. 1833년 교회 근처를 지나다니던 농부가 성모의 목소리를 들은 뒤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게 됐다고 하는데, 교회 내부엔 기적의 목소리에 의해 구원받은 내용이 적힌 감사 편지가 벽을 가득 메운다.

아주르 윈도가 없어진 자리에도 가봤다.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아주르 윈도는 없지만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압도적인 해변 풍광은 이곳으로 여전히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시리도록 푸른 지중해 바다와 광활하게 펼쳐진 암반 위 이름 모를 풀들이 묘하게 얽혀 있어 생소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가로로 무지하게 긴 필름이 있다면 한 프레임에 담고 싶을 정도로 길고 와일드한 자연의 프레임, 세상의 소리를 미세하게 다 담을 수 있는 녹음기가 있었다면 녹음해 오고 싶을 정도의 물보라와 기이한 새들의 울음소리, 스크린의 한 장면 안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고조섬의 새로운 윈도 ‘위에드 일미엘라’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윈도를 발견했다. 위에드 일미엘라 윈도(Wied il-Mielah Window). 이곳은 그동안 아주르 윈도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다. 역시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주간티아라는 거인이 만든 신전 이채

섬은 작아도 해변마다 볼거리가 가득하다. 로마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오래된 염전에서는 고조산 소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강한 햇볕 아래 만들어지는 소금은 알갱이가 크고 거칠다. 슬랜디(Xlendi)는 고조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다. 휴양형 아파트와 호텔도 있고 바다를 둘러싼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어 1년 내내 관광객으로 붐빈다. 특히 여름엔 방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1961년에는 기원전 2세기께와 5세기께 조난 침몰한 어선이 발견돼 약 35m 깊이에서 인양했다. 선내에서 발견된 유물은 고조의 고고학박물관에서 견학할 수 있다. 고조 고고학박물관은 더 시타델 안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주간티아 신전’

몰타의 역사는 종종 BC 3000년 훨씬 이전으로도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주간티아 신전을 고조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주간티아는 몰타 본섬의 하자르 임과 더불어 기원전 3600년에 세워진 거석 유적으로 영국의 스톤헨지,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앞선 것이다. ‘주간티아’라는 거인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신전은 5개의 방과 4개의 방이 있는 두 공간으로 크게 나눠져 있고 신전 입구에는 제단이 있다. 유적지는 곳곳에 허물어진 흔적으로 황량한 느낌이 들지만, 얼기설기 쌓아 올린 듯 보이는 돌담이 거의 6000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진다.

지난번 고조섬과 완전히 달랐던 두 번째 고조섬 방문, 세상의 모든 곳은 다시 한번 기회가 된다면 또 한 번 가볼 가치가 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리라.

여행메모

인천에서 몰타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유럽 주요 도시에서 환승하거나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페리로 입국하는 방법이 있다. 언어는 영어와 이탈리아어, 몰타어를 두루 쓴다. 통화는 유로를 사용한다. 몰타섬에서 고조섬으로 이동하는 페리는 24시간 운항한다. 간격은 45분에서 1시간으로 유동적이다.

몰타에 머물면서 당일치기로 고조를 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고조에 이틀 이상 머문다면 멋진 호텔에서의 넉넉한 시간과 와이너리 방문, 신선하고 맛있는 고지탄 퀴진을 맛볼 수 있다. 우선 호텔은 켐핀스키 산 라우렌조를 추천한다. 조용한 휴가가 필요하다면 멀리, 가급적 더 멀리 갈수록 효과가 크니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고조 현지 음식을 경험해 봐야 한다는 것. 리조트 안에서도 훌륭한 음식을 경험할 수 있지만, 셰프 조지 보르그의 테이블에 앉는 것은 행운이다. 조지 보르그의 비니에카프리치(Vini e Capricci)는 고조 음식을 파인다이닝의 레벨로 올린 곳이다. 고조산 와인과 치즈, 고조산 아페리티프를 즐기며 천천히 고조의 시간을 즐기다 보면 인생 뭐 별거 있나 싶다. 아침에 갓 짜낸 염소젖으로 만든 신선한 고조산 치즈, 그것은 몰타에서 먹고 마신 것 중, 아니 세상에 태어나서 먹어본 치즈 중 가장 맛있는 기억이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고조산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켜면 이 섬이 한껏 더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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