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침해' 프레임에 갇힌 한국
유통혁신 내치고 갈등·손실만 키워
대기업 상생의무 함께 기회도 줘야"

정연승 < 단국대 교수·경영학·한국유통학회 부회장 >

1990년대 이후 유통 대기업과 온라인 쇼핑의 성장으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으로 대표되는 소상공인의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정부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처방을 내놓았는데, 주된 방향은 유통 대기업 규제를 통한 골목상권 보호였다. 이에 따라 국내 유통시장은 2010년대 들어 상생이 화두로 떠오르며 혁신보다는 생존이 중요한 이슈가 됐다.

그런데 해외 유통업체들은 4차 산업혁명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며 지역과 업태를 뛰어넘는 유통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아마존, 중국 알리바바, 영국 오카도 등은 모두 혁신적인 사업 모델과 이를 뒷받침하는 첨단 기술을 무기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최근 아마존은 한국 소비자 대상 무료배송 서비스를 하며 한국시장을 노크하고 있고 알리바바 신유통의 핵심 허마센셩(신선식품 슈퍼마켓)도 한국시장 진출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불확실성이 더 커질 미래 소비시장에서 유통기업들이 살 길은 결국 고객 니즈(needs)를 충족시키는 혁신밖에 없다.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온라인 쇼핑에 비해 국내 오프라인 유통은 수년간 정체 상태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은 소비시장 침체, 구매패턴 변화, 유통규제 등으로 인해 이전과 같은 활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많은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오프라인 유통은 새로운 고객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혁신형 유통이 필요하게 됐고, 최근 복합쇼핑몰이 등장했다. 유통혁신 모델로 볼 수 있는 복합쇼핑몰은 온라인이 줄 수 없는 다양한 체험과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결합해 쇼핑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격상시켰고, 고용과 투자를 증대하고 지역경제도 살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서울 상암, 부천 등지에의 복합쇼핑몰 출점이 ‘대기업 골목상권 침해’라는 프레임에 갇혀 중단됐다. 이뿐만 아니라 국회는 곧 복합쇼핑몰 영업규제 법안을 심의할 예정인데 이미 입점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이 적용 중인 상황에서 복합쇼핑몰의 월 2회 의무휴업이 시행된다면 복합쇼핑몰의 다수를 차지하는 입점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또 대규모 점포 입지규제로 보호구역이 전통시장뿐만 아니라 상점가까지 확대된다면 실제 출점 가능한 지역도 없어진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프레임은 사회적 갈등만 조장하고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돌아간 것 같지 않다. 소상공인, 유통 대기업, 지역주민, 지방자치단체 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상공인에게는 규제효과가 약하며 유통 대기업은 투자를 축소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입점업체는 사업기회 손실을 보고 있다. 대·중소 유통업체 간 갈등 중재도 지자체와 정부는 빠지고 당사자 자율에 맡김으로써 갈등중재 비용만 증폭됐다.

글로벌 유통업태는 진화와 융합을 거듭하고 있다. 기업은 이런 소비시장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분초를 다투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제대로 반영한 유통규제법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복합쇼핑몰의 업태 정의는 정확하며, 현재의 복합쇼핑몰과 쇼핑센터의 업태 구분은 명확한가. 규제로 인한 소비자 후생의 후퇴에 대한 분석은 해 봤나. 글로벌 유통규제 완화 트렌드를 역행하고 있는 데 대한 실익은 있는 것인가.

소상공인 문제는 결국 국가정책이 주도하고 유통 대기업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규제보다는 지원과 육성으로 접근하고 유통 대기업의 의무는 확대하되 기회는 더 크게 줘야 한다. 최소한 경영과 투자를 위한 불확실성만큼은 제거해야만 유통기업들의 한발 앞선 도전과 혁신이 재가동될 수 있다. 알리바바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아마존과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기업은 살아남기 위한 혁신마저 제동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 우리 유통기업이 소상공인들과 함께 더 많은 새로운 가치를 일궈낼 수 있도록 정부의 긍정적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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