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大 경제학과의 '골짜기 세대'
'80년대 사고'로 경제정책 주도
이상과 현실 괴리 이젠 인정해야"

오형규 논설위원

그 출발은 1984년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집권 4년차에 자신감이 붙자 소위 ‘학원자율화’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그해 6월 해직교수 변형윤이 서울대 경제학과에 복직했다. 1960~1970년대 한국판 종속이론이었던 민족경제론과 식민지 반(半)봉건사회론이 서울대 강단에서 부활했다.

그때 대학원 조교가 홍장표였다. 이듬해 김상조가, 2년 뒤에는 강신욱, 류동민 등이 경제학과 학부를 거쳐 대학원에 들어갔다. 변 교수의 강력한 천거와 학생들의 요구로 1989년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김수행(한신대)이 교수로 임용됐다.

변형윤·김수행 교수 주변에는 사회 모순을 이론적으로 풀어보려는 후학들이 몰려들었다. 변형윤의 호를 딴 ‘학현(學峴)학파’가 자연스레 형성돼, 수시로 모여 세미나를 열었다. 이 시기에 배출된 서울대 경제학과 석·박사들이 유독 좌파 경제이론에 몰입한 배경이다.

그러나 공산권 붕괴는 많은 이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관념 속 이론이 현실에서 고장나버렸기 때문이다. 더 결정적 사건은 1980년대 말 안병직 교수가 “연옥을 통과하는 지적 고뇌 끝에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실효성을 인정한다”고 전향한 것이었다. 그는 마르크시즘과 마오이즘에 입각해 한국을 식민지 반봉건사회로 규정해 민족해방(NL) 운동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 인물이 강의시간에 공개적으로 “꿈 깨라, 정신차리고 공부해라”라고 일갈했으니, 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안병직의 제자인 이영훈·김낙년 교수도 코페르니쿠스처럼 생각을 바꿨다. 1988년 이영훈이 좌파 원로인 박현채 교수에게 올림픽대로를 지나며 “저 도시 불빛을 보십시오. 저게 어떻게 신식민지입니까”라고 했다가 호되게 질책을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80년대 서울대 경제학과는 이렇게 굴곡진 ‘골짜기 세대’를 배출했다. 선진국에선 결별한 마르크시즘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변형윤·박현채 같은 이들은 경제개발, 수출 드라이브, SOC 건설 등 경제성장을 위한 모든 수단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언은 하나도 들어맞은 게 없다. 사회주의 모순은 북한, 베네수엘라 등 곳곳에서 입증됐다. 그럼에도 젊은 시절 주입된 낡은 이론에 아직도 경사돼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문제는 그때의 ‘골짜기 세대’가 현 정부 경제정책의 주류를 맡고 있다는 점이다. 홍장표는 경제수석을 거쳐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이고, 김상조(정운찬 교수의 제자)는 공정거래위원장이다. 강신욱은 통계청장이 됐고, 류동민(충남대 교수)은 학계 연구자금을 배분하는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진흥본부장이다.

올 들어 태풍, 가뭄 등 천재지변은 거의 다 비켜갔다. 반면 경제위기라는 재난은 쓰나미처럼 엄습해 온다. 세계경제 호황 속에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나홀로 불황’인 것은 인재(人災)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청와대 대변인은 고용참사에 대해 “경제 체질을 바꾸는 과정에서의 진통”이라고 했지만 체질을 바꾸긴커녕 진통만 겪다가 목숨이 위태로울 판이다.

정권의 핵심 실세들은 틈만 나면 “지배세력을 교체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서울 강남에 사는 성장론자의 자리를 똑같이 강남 사는 분배론자들이 한자리씩 꿰차는 것 말고 무엇이 달라질지 의문이다. 소위 지배세력은 ‘인사검증 7종세트’에 비춰볼 때 좌우를 떠나 거의 대동소이함을 이젠 국민도 안다.

세계적으로 구조조정, 노동개혁, 규제혁파라는 ‘성장의 정석’은 입증된 사례가 차고 넘친다. 이를 외면한 채, 시대착오적인 경제이론을 고집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개방경제 시대에 반(反)시장·반기업 정책으로 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신호 위반과 중앙선 침범의 난폭운전이나 다름없다. 지금 바꿔야 할 것은 세상 변화에 무지한 채 확증편향에 함몰된 정책 입안자들의 생각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벌어지고 있는 ‘정부 실패’는 되돌릴 방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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