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 연구원 출신 윤철 대표
독자연구로 썩는 종이코팅 개발

유럽에 350억원 규모 수출 확정
미국 재활용품 시장서도 러브콜

전자레인지·오븐 사용도 안전
종이컵·간편식 용기로 응용

윤철 리페이퍼 대표가 나뭇잎과 똑같은 속도로 썩는 종이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종이컵과 코팅용지는 분리수거 대상이다. 하지만 분리수거의 효과는 없다. 종이컵과 코팅용지는 재활용되지 않는다. 보통 소각된다. 종이가 수분을 흡수해 눅눅해지지 않도록 표면에 코팅한 폴리에틸렌(PE)을 종이와 따로 떼어내는 데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땅에 묻어도 PE로 코팅된 종이는 잘 썩지도 않는다.

벤처기업 리페이퍼는 이런 PE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코팅용재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환경 규제가 강력한 유럽에 있는 기업이 기술력을 알아봤다. 유럽 3대 제지사 중 한 곳인 렉타는 리페이퍼에서 2021년까지 350억원어치 코팅용재를 구매하기로 했다. 윤철 리페이퍼 대표(52)는 “유럽과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도 제품 공급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제지사도 못 넘은 ‘고비’ 해결

리페이퍼가 상용화한 코팅용재의 원료는 종이를 붙일 때 쓰는 풀의 구성 성분 아크릴레이트다. 평소에는 물을 밀어내는 소수성(疏水性)을 띠어 종이컵의 물 흡수를 막는 외벽 역할을 하다 물속에서 풀어지면 물과 잘 섞이는 성질로 ‘변신’한다. PE와 달리 따로 분리하지 않아도 재활용 과정 중 폐지를 물에 푸는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내려 흩어진다.

PE를 아크릴레이트로 대체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윤 대표가 한솔제지에서 일할 때 얻었다. 1994년 한솔제지에 입사한 그는 1997년부터 PE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 찾기에 매달렸다. 그때 찾아낸 소재가 아크릴레이트였다. 하지만 당시 아크릴레이트는 PE에 비해 가격이 4배 정도 비쌌다. 더 이상 연구를 진척시킬 수 없었다. 재활용이 편리해진다는 이유로 종이 제조원가를 높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지금은 PE는 가격이 2배 정도 오르고 아크릴레이트는 반대로 절반으로 떨어져 경제성이 생겼다”며 “당시 아크릴레이트가 지금 가격이었다면 한솔제지에서 연구를 마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한솔제지를 나온 윤 대표는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뒤에도 연구를 계속했다. 아크릴레이트를 유화액(에멀션) 상태로 만든 뒤 추가 공정 없이 종이에 코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고비였다. 글로벌 제지사들도 넘지 못한 벽이었다. 윤 대표는 2014년 해법을 찾아냈다. 연구원 시절 닦아놓은 인맥을 바탕으로 지인이 있는 대학 실험실과 기업 부설 연구실을 전전한 지 3년 만이었다. 그는 “글로벌 회사에도 종이 전문가와 코팅용액 전문가는 많은데 이 두 분야에 모두 능통한 사람은 별로 없다”며 “한솔제지에서 양쪽 분야 일을 모두 맡았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10조원 친환경 포장재 시장 조준

포장재 및 제지 공급 전문 시장조사 연구기관인 스미터스 피라는 친환경 포장재 세계 시장 규모를 최근 10조원으로 추산했다. 세계 전체 제지 시장의 8% 정도다. 리페이퍼가 정조준한 시장이다. 윤 대표는 “최근 중국이 사들이는 재활용 쓰레기의 품목을 줄이자 한국에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다”며 “친환경 포장재 시장은 계속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리페이퍼가 개발한 코팅액으로 코팅한 포장재는 전자레인지와 오븐에서 사용해도 안전한 것이 특징이다. 고열에도 분해되지 않으며 사람이 먹어도 배변 시 빠져나온다. 껌이 소화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종이컵은 물론 일회용 접시, 간편식 용기로도 쓸 수 있다. 리페이퍼는 경기 안산 공장에 월 5000t의 코팅액 생산능력을 갖췄다. 종이 1t에 필요한 코팅액은 100㎏이다. 국내에서 연간 소비되는 전체 포장지는 30만t 정도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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