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틀 안에서 재량권 주는 IFRS
기업 스스로 오류 수정토록
당국은 '길잡이'로 역할 전환해야"

정도진 < 중앙대 교수·경영학 >

유럽연합(EU)이 2002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을 발표한 법률문단에는 “IFRS가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럽 기업의 경쟁에 불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IFRS의 본고장’인 EU가 이 기준을 채택한 이유는 흔히 말하는 회계투명성 제고라는 관념적 측면이 아니라 유럽 통합을 위한 정책적 수단의 하나였다. 오히려 EU는 회계기준이 유럽 기업들을 규제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밝혔다.

IFRS는 원칙 중심의 회계기준이다. 원칙 안에서 기업에 회계처리 판단에 대한 재량과 책임을 주는 방식이다. 기업의 손발을 묶고 옥죄는 규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기업들이 지켜야 할 규정을 일일이 제시하는 미국 회계기준과는 근본적으로 접근 방식이 다르다. 유럽이 2005년 상장 기업의 연결재무제표에 IFRS를 의무 적용한 뒤 134개 국가들이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한국은 2011년 IFRS를 전면 도입했다. 지난 7년간 IFRS를 정착시키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이제 감독 방향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논란은 ‘원칙주의’ 회계처리 아래서 어떻게 감독 방향을 잡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계기가 됐다. 현재 회계감독제도는 기업들이 IFRS를 제대로 지키고 투자자에게 보고하도록 유도하는 데 많은 한계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IFRS를 주도하고 있는 영국과 독일의 경우 ‘자발적 수정’ 중심의 감독을 도입하고 있다. 규정 중심의 회계기준 아래에서는 규정을 지키지 않은 기업을 사후적·규제적으로 감독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면, 원칙 중심의 회계기준에서는 사전적·자발적 감독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금융감독원은 제약·바이오 연구개발비와 관련해 회계감독 방향을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제약·바이오의 개발비가 적정한지 들여다보겠다고 예고했다. 이어 올 2월 ‘개발비 주석공시 모범사례’를 발표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2017년 재무제표를 수정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이후 2017년 12월 말 결산 상장 법인의 사업보고서 제출시한이 4월2일로 종료됐고, 금감원은 10여 개 업체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개발비 감리에 착수했다. 예고 없이 감리에 들어간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IFRS상 연구개발 활동과 관련한 지출은 연구비라는 비용 또는 개발비라는 무형자산으로 회계처리할 수 있다. 기업들은 연구개발과 관련한 지출을 비용보다 자산으로 회계처리하려는 유혹이 존재한다. 실제 연구개발 활동에 든 지출에 대해 비용보다는 자산으로 처리한 규모가 더 많다. IFRS 도입 이후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의 업체당 연평균 개발비(자산)는 527억원으로, 연구비(비용) 490억원의 1.17배다. 코스닥시장 상장 기업의 경우 자산화된 개발비는 업체당 연평균 27억원으로, 연구비 23억원의 1.13배를 나타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분식 여부가 감리위원회에서 한창 다뤄지던 지난 5월18일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한국공인회계사회를 방문해 “회사 스스로 회계오류를 수정하도록 지도를 활성화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지난달 말에도 금융위는 사후 제재보다는 개선권고나 시정조치 등 간접적인 수단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작동되기 위해선 기업들 스스로 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준수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저성장 시대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제약·바이오산업이 신성장 동력으로 커가기 위해선 글로벌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회계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회계감독당국이 기업에 철퇴를 내리는 ‘저승사자’가 아니라 사전적·자발적 수정을 유도하는 ‘길잡이’가 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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