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아몬드의 도시' 캘리포니아

8월 중순~10월이 아몬드 수확 철
세계 생산량 80% 캘리포니아서 나와
갓 딴 아몬드는 복숭아향 단맛

비타민E 풍부해 노화 방지에 도움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
다이어트용 간식으로 인기

캘리포니아 농가의 아몬드 수확은 대부분 기계화돼 있다. 사진은 셰이커가 아몬드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떨어뜨리는 모습. /캘리포니아아몬드협회 제공

“짐과 함께 아몬드를 묻어라.”

기원전 1352년 투탕카멘은 사후세계로의 여행을 위해 아몬드를 무덤에 넣었다고 전해진다. 아몬드의 영양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고대 이집트인만큼이나 한국인의 아몬드 사랑도 매년 깊어지고 있다.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국내 아몬드 수입량은 2007년 5980t에서 2017년 2만5171t으로 10년 사이 420% 급증했다. 최근 브라질너트, 사차인치 등 ‘신흥 강자’의 위협 속에서도 작년 수입량은 전년 대비 7.9% 늘었다.

아몬드 최대 산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다. 세계 생산량의 80%가 이곳에서 나온다. 덥고 건조한 여름과 비 오는 겨울 등 아몬드 생산에 이상적인 기후조건을 갖춰서다. 특히 중심부인 센트럴밸리는 ‘신의 축복을 받은 세계의 과일 바구니’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토양이 비옥하다. 수확은 8월 중순부터 10월까지 이어진다. 지난 달 28일 현지 아몬드 농장을 찾아 ‘견과류의 왕’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아몬드 최대 생산지’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 리폰시에 자리 잡은 트라밸리&피픈(Travaille&Phippen) 농장은 4대째 이어져 오는 가족농장이다. 1500에이커(약 607만㎡) 규모의 농지와 가공시설까지 갖춘 ‘메이저 농가’다. 매년 2400만 파운드의 아몬드를 생산한다. 농장주인 데이브 피픈 대표는 “1920년대 네덜란드 이민자이던 할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했다”며 “사위가 내 뒤를 잇고 그다음은 손자 손녀들이 물려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전체 농가 6800여 곳 가운데 90% 이상이 이런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농장 규모에 걸맞게 대부분의 수확 과정은 기계화돼 있고 그 중심엔 셰이커(shaker)가 있다. 집게로 나무를 움켜쥔 뒤 진동 방식으로 열매를 떨어뜨리는 기계다. 셰이커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농장에선 마치 소나기가 내리듯 ‘아몬드 비’가 내렸다. 땅에 떨어진 아몬드는 5~7일 정도 수분이 마를 때까지 그대로 둔다. 건조한 캘리포니아 기후가 빛을 발하는 시기다. 그렇다면 건조하기 전 생(生)아몬드 맛은 어떨까. 나무에서 갓 딴 아몬드를 맛보니 복숭아향과 함께 옅은 단맛부터 느껴졌다. 구운 아몬드 특유의 고소함은 덜했지만 식감이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1주일간 건조한 아몬드는 가공 공장으로 옮겨진다. 공장 내부에 들어가 보니 기계 소음 때문에 주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다. 이곳에서 껍질 제거와 로스팅, 소독, 선별 작업이 차례로 이뤄진다. 시간당 1만 파운드의 아몬드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피픈 대표는 “아몬드가 쪼개지거나 긁힌 정도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며 “가공작업의 수준이 곧 농가의 경쟁력인 이유”라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 농가 가운데 가공시설을 갖춘 곳은 100여 곳에 불과하다. 가공시설이 없는 농가는 수확한 아몬드를 인근 공장으로 옮겨 생산을 맡긴다. 트라밸리&피픈 농장처럼 재배부터 가공까지 수직적 통합을 이룬 곳은 아몬드 매출 이외의 수익이 보장되는 셈이다. 이런 수익구조는 곧 가족농장의 지속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벗겨진 아몬드 외피와 내피는 공장 밖에 산처럼 쌓여 있다. 이대로 폐기되는가 했더니 피픈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부드러운 외피는 가축의 사료로, 내피는 축사 깔개로 활용된다고 한다. 그는 “아몬드는 버릴 게 없다”며 “껍질뿐만 아니라 긁히거나 쪼개진 아몬드도 버터나 오일을 만드는 데 쓰인다”고 말했다.

주전부리에서 ‘뷰티 간식’으로

한국 수출용 아몬드 등급은 최상급이다. 피픈 대표는 “한국 소비자는 크기와 모양을 까다롭게 본다”며 “세계 9번째 수출국이라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아몬드는 90% 이상이 미국산이고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에서 100% 생산된다. 국내 대형마트에 깔린 아몬드는 모두 캘리포니아에서 온다고 보면 된다.

최근 아몬드는 한국 2030 여성들에게 ‘뷰티 간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기 요인은 대표적인 항산화제 비타민E에 있다. 비타민E는 지용성 비타민으로 세포막에서 세포가 산화되는 것을 막아준다. 아몬드 한 줌(23알)에는 비타민E 8㎎이 들어 있다. 한국인 비타민E 하루 권장 섭취량의 73%에 달한다. 김민정 캘리포니아아몬드협회 이사는 “웰빙 바람을 타고 한국인들의 간식 섭취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아몬드는 영양소를 고루 갖춘 견과류 간식”이라고 말했다.

적은 양으로 포만감을 주는 것도 눈길을 끈다. 2014년 유럽영양학회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오전에 아몬드를 간식으로 섭취했을 때 가장 배가 덜 고프고, 전혀 먹지 않은 날에는 공복감을 느꼈다고 한다. 한 줌에 4g의 식이섬유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지방 때문에 살이 찐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아몬드 23알의 칼로리는 120~130㎉에 불과하고 지방은 불포화지방산이라 체중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원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 견과류인 셈이다.

아몬드는 피부미용을 위한 화장품 재료로도 사용된다. 와인앤로지스호텔 스파에서 일하는 에이미 보는 “아몬드 오일의 보습 성분이 피부를 생기 있게 해준다. 다크서클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몬드 오일과 설탕만 있으면 집에서도 천연 보디스크럽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3분 정도 피부에 바르고 미온수로 헹궈주기만 하면 끝. 실제로 체험해보니 거칠었던 손등이 촉촉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뷰티 간식다웠다.

캘리포니아=박병준 기자 r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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