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주거·교육 등 장벽 높아져
'더 나은 삶' 욕구, 국가가 부정 못해
'내로남불' 아닌 '언행일치'부터"

오형규 논설위원

“현실을 모르는 한국 좌파는 게으르고 무책임하다.” 보수 정치인의 말이라면 발끈할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 말의 임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교수 시절인 2014년 《한국의 자본주의》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다. 당시 장 실장은 “한국 경제가 모순적”이며 “좌우진영의 논리가 전부 파편적”이라고 싸잡아 비판했다.

지금은 그가 더 모순적으로 비친다. 재벌 비판의 선봉이면서 재벌 주식으로 재테크한 것이나, 최근 “모두 강남에 살 필요 없다. 강남에 살아봐서 드리는 말씀”이라는 ‘염장 발언’이 그렇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맨해튼 한복판이나 베벌리힐스의 천문학적 집값을 정부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얘기가 엇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정책 사령탑으로서 ‘현실을 모르는 발언’인 것도 사실이다. 새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보고 난 주부가 이사가고 싶은 게 투기심리인가. 온 동네 집값이 뛰어 내집 마련은 엄두도 못 내게 된 서민, 신혼부부의 심정은 헤아려 봤을까.

지방 부동산이 꽁꽁 얼었다지만 예외도 있다. 전남 목포의 구도심 집값은 1년여 만에 ‘따블’로 뛰었다. 여당의 한 여성의원이 구옥(舊屋) 세 채를 사고나서다. 은퇴 후 공방 운영을 위해서라는데, 주민 시각은 달랐다. 때맞춰 유달산 해상케이블카, 근대역사거리 리모델링이 추진돼 군산 여수 같은 관광도시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목포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다.

세상사는 이렇게 돌아간다. 가격은 수급이 깨질 때 오르고, 투자는 기대가 있을 때 살아난다. 일차원적 정책으로 다차원적 시장을 따라잡을 수 없기에 정부는 시장을 못 이긴다. 사실 ‘정부’라는 것도 한정된 좁은 지식과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당국자들의 집합일 뿐이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마다 갈수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삶의 토대인 일자리, 주거, 교육에서 특히 심하다. ‘일자리 정부’에서 1년 동안 40대 가장 16만 명과 청년 17만 명이 노동시장에서 밀려났다. 산업경쟁력 저하에 소홀하고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올린 탓이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인데, ‘일자리 사다리’가 사라지면 무슨 수로 ‘더불어 잘사는 나라’를 만들 건가.

꼬일 대로 꼬인 부동산 정책은 ‘주거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정부가 어제 ‘초고강도’라는 ‘9·13 대책’을 내놨지만, 전문가들은 실효성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집값이 오르는 지역의 공급을 막고 대출을 억제해선 어림없다는 것이다. 자꾸 가격과 싸우려 들면 조만간 또 대책을 내놔야 할지 모른다. ‘주택보급률 100%’여서 공급이 충분하다는 정부 주장도 모두가 현재 주거에 만족한다는 허황된 전제를 깔고 있다.

주거와 밀접한 교육 수요를 외면한 것도 일차원적 정책 오류다.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것이 입시전쟁”(강준만 전북대 교수)이란 말마따나, ‘교육 사다리’는 모든 부모가 예민하다. 비(非)강남의 특목고·자사고를 없앨수록 강남 8학군 수요가 부풀어 오른다. 방과 후 영어 금지는 ‘영어 디바이드(divide)’에 대한 부모의 불안감까지 키웠다.

정부가 ‘더 나은 삶’을 위한 사다리를 걷어찰 때 국민은 분노하고 지지를 거둔다. 국민은 지도층의 말보다 행동을 지켜본다. 정책 입안자들이 ‘내로남불’이 아니라 ‘언행일치’를 보여줄 때라야 정책 신뢰도 생겨날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 투기로 돈 벌 생각을 못 하게 하겠다”고 엄포를 놔도, 정권 실세 누구도 강남 집을 팔지 않는 한 공염불이다. 오히려 지난해 8·2 대책 후 그들의 집값은 4억~7억원씩 올랐다. 정부 말을 믿으면 바보가 될 판이다.

이념과 정책은 추상적이어도 국민의 삶은 결코 추상적일 수 없다. 교조적인 소득주도 성장으로 생업(生業)을 건드린 결과가 일자리 참사요, 새 집에 살고픈 욕구를 투기라는 추상적 언어로 치부한 대가가 집값 폭등이다.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고등생물인데, 단세포적으로 접근하는 순간 ‘정부 실패’는 필연이 된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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