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반복 아닌 새로운 관찰의 시간
공을 들여 보고 들으면 삶이 달라질 것

이경재 < 서울시 오페라단 단장 >

미셸·루트 번스타인 부부가 함께 낸 책 《생각의 탄생》은 인간의 창조적 상상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또 훌륭한 인물들이 그들의 창조적 상상력을 어떻게 현실로 구현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컨대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물리학자는 다양한 이론으로 자신들이 떠올렸던 것들을 세상에 구현하며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접할 때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사진을 찍는다면 보통 사진기에 눈을 대고 셔터를 누르는 행위를 연상한다. 하지만 정작 사진을 찍는 일은 빛의 각도에 따라 색감과 느낌이 달라지고, 카메라의 위치에 따라 같은 현상을 보고 완전히 다른 작품을 내놓기도 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사체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상황을 모두 포함하는 다양한 각도의 상상력이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창조적 상상을 하는 화가나 음악가, 또는 물리학자는 그들의 기술로 결과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번스타인 부부는 이런 창조적 상상력이 관찰로부터 시작된다고 서술한다.

관찰은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관찰의 사전적 의미는 ‘주의해 자세히 본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관찰은 그 대상이 사물이든 인간이든, 그것에 관한 관심이자 시간의 투자를 뜻하기도 한다. 보이는 것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대상의 상태, 세부적인 느낌, 다양한 각도에서의 이해가 도모된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자연시간에 나뭇잎을 관찰하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자그마한 초록색 식물 이파리로만 보기 일쑤였다. 더 적극적으로 관찰하면 잎사귀의 연하고 거친 느낌, 잎맥의 모양과 그 속을 타고 뿌리에서부터 왔을 영양분의 움직임, 부분마다 다른 색감, 파릇한 향기, 무게감 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자꾸 보다 보면 이파리와 닮은꼴의 동물도 연상할 수 있다.
관찰은 본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듣는 일도 관찰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은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 음반을 수십 장 소장하고 계셨다. 그분은 베토벤의 음악을 각기 다른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주하는 것을 듣고 모두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도 일상생활 중에 다른 친구의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맞힐 수 있다.

유명 가수와 목소리가 거의 비슷한 일반인이 출연해 진짜 가수를 가려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실제 가수와 너무나 비슷한 목소리에 방송 초반 청중은 경악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목소리의 형태, 습관, 호흡의 느낌을 듣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세하지만 다른 느낌을 찾아가면서 원래 가수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맛을 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수백, 수천 종류의 와인이 있는데 이를 마시는 사람마다 당도, 산미, 향기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 각자 선호도를 정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다양한 것을 만나고 느낄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갖게 된다. 보고 듣고 만지는 여러 상황은 일반적인 일이지만 이런 순간 중 한두 번쯤은 주의 깊게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주변이 조금은 새롭게 보일 것이다. 또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소소한 즐거움은 삶을 조금은 더 풍요롭게 꾸며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상은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관찰을 통해 주변의 많은 것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늘 새로운 학습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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