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논설위원

가을 정기국회를 예산국회라고도 하는 것은 정부예산 심의가 법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100일 전쟁’이라는 예산국회가 시작됐다. 올해는 또 어떤 일로 국회가 유권자들을 놀라게 할까. 이성과 냉철, 끈기와 집요, 논리와 합리, 대안과 미래가 돋보이는 대의기관 모습은 보기가 어려울까.

며칠 전의 한 토론회를 그런 관점에서 돌아본다. 박명재·추경호 의원이 함께 주최한 ‘재정정책 개선 토론회’에 의원 20명 이상이 참석한 것은 예산국회 시작 시점이어서 더 의미가 컸다. 자유한국당의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자칭 ‘정책통’ 의원들도 여럿 보였다. 하지만 토론에 앞서 사진 먼저 찍고 하나둘 빠져나가는 모습은 여전했다. 두 시간 남짓한 토론회를 끝까지 지킨 의원은 박 의원 외에 강효상·권성동 의원 정도였다.

학생급감속 늘어나는 교육예산

‘초(超)확장예산’ 심의를 앞두고 전초전 격이었는데 누가 들어야 할 토론이었는지, 아쉬움을 남겼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의원들 중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있었다는 사실은 작은 기대를 갖게 했다. 야당의 공세적 토론장에 여당 의원이 끝까지 남은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이런 ‘작은 일’이 쌓일 때 진정한 ‘정책 국회’가 될 것이다.

정책 국회를 최근 지면에 오르내린 ‘협치’란 말로 접근해보자. 공동정부도 연립내각도 아닌 판에 청와대가 툭 던졌으나 동력을 확보 못한, 그 말 말이다. 여당이 여전히 협치에 미련이 있다면 예산심의에서 한번 시도해보길 권한다. 잘만 하면 정책 국회에 다가섰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법이 그렇듯, 정부 예산은 정책의 반영 통로다. 예산 문제에서도 협치가 쉬울 리는 없다. 일자리 예산부터가 그렇다. 그래서 여야가 공감대를 찾기 쉽고 성과 내기도 수월한 세 부문을 우선적으로 제안한다. “국회가 제 역할 좀 했다”는 평을 듣기 쉬운 분야다.
첫 번째가 교육예산 효율화다. 학생은 급감하는데 교육예산은 계속 늘고 있다. 2015년 614만 명이었던 초·중·고 학생이 올해 563만 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교육청으로 가는 돈은 이 기간 39조원에서 52조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내년에는 55조7000억원으로 잡혀 있다. 내국세의 20.27%가 자동 배정되기 때문이다. 투입(input)과 성과(output)의 불균형을 부실로 본다면, 우리 공교육은 부실덩어리다. 여야의 판단이 다를 이유가 적은 분야다. ‘교육감 호화 관사 논란’ 같은 사안도 예산을 놓고 살펴보면 개선점이 나올 것이다.

농업·中企도 25조…'지출개혁'해야

보조금이 넘치는 농업예산도 그렇다. 농업을 현대의 ‘생명공학산업’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언제부터 계속됐나. 14조6480억원의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내년 예산이 농업의 ‘6차 산업화’에 기여하고 있는가. 이 역시 당 차원에서 대립각을 세울 사안은 아니다. 10조원이 넘는 중소기업예산도 마찬가지다. ‘보호 대상’으로 인식된다는 측면에서는 중소기업 쪽도 농업 못지않다. 중소기업을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다. ‘산업예산’으로 차원을 높여 보자는 얘기다. “중소기업예산은 실상 복지예산”이라는 자성이 정부 안에도 있다는 점을 국회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데서 먼저 대안을 찾고 성과를 합의해 내는 게 중요하다. 대립이 뻔한 쪽의 갈등 때문에 실현 가능한 협치도, 국회가 해야 할 최소한도 놓쳐서는 안 된다. 실속 없는 입씨름에 매몰됐다가는 ‘야합’ ‘독선 여당’ ‘무능 야당’이라는 비판을 듣기 십상이다.

청와대가 뒷감당을 못한 협치를 국회가 한번 시도해보라. 사회 변화에 맞춰 예산 지출을 제대로 짜는 것은 정부 몫이지만, 국가 재원이 효율적으로 쓰이는지 잘 감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회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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