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자금조달 '비명'

국채 발행도 석달 새 40% 감소
5년 전 긴축발작 때보다 안좋아
골드만삭스 "통화가치 더 하락"
인도네시아의 부동산 개발업체 인틸랜드디벨롭먼트는 국제 채권시장에서 11.5% 금리에 2억5000만달러 규모의 3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8일 발행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자 전격 철회했다.

신흥국들이 통화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채권 발행을 통한 달러화 조달까지 ‘절벽’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 6~8월 신흥국 기업의 해외 채권 발행액은 전년 동기 대비 60% 급감하고 정부 채권도 40% 감소했다,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은 신흥국 채권 발행이 계속 악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양적완화(QE)로 달러값이 싸진 최근 몇 년간 신흥국들의 달러 표시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금융 부문을 제외한 신흥국의 외화 표시 부채 규모는 2013년 말 4조9000억달러에서 올해 1분기 사상 최대 수준인 5조5000억달러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채권시장 경색은 기존 부채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을 높이고 있다. 미국 시장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만 올해 만기 도래하는 달러 표시 채권 규모가 380억달러에 이른다.

최근 발행된 채권의 만기가 긴 상당수 신흥국은 아직 괜찮다는 평가가 많다. 금리가 높아졌지만 발행도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터키, 아르헨티나 등은 다르다. 윌리엄 잭슨 캐피털이코노믹스 애널리스트는 “현재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터키 은행, 아르헨티나 정부 등은 디폴트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찰스 로버트슨 르네상스캐피털 수석경제학자는 “신흥국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해외 채권 시장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신흥국 은행들이 2008년 위기 여파로 해외 신디케이트론 활동을 줄이면서 신흥국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해외 채권 발행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긴축으로 약세를 보여온 신흥국 통화는 미·중 무역전쟁 심화로 더 흔들리는 모습이다. 많은 신흥국이 자원 수출에 의존하는데 무역갈등이 심해지면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이날 MSCI 신흥국 통화 지수는 1580까지 밀려 2017년 4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대선을 앞둔 브라질 헤알화는 달러 대비 1% 하락한 4.0942헤알을 나타냈다.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협상에 반등했던 아르헨티나 페소화도 1.05% 내렸다. 터키 리라화는 2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낮게 나와 하락했다. 서방의 추가 제재 우려로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70루블을 돌파했다. 2016년 3월 이후 처음이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자체 모델을 이용해 신흥국 통화가 추가 하락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마크 오제로프와 카마크샤야 트리베디 분석가는 올해 아르헨티나 페소화가 50% 폭락하는 등 신흥국 통화가 큰 폭으로 밀렸지만 여전히 2016년 초만큼 저평가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인도 루피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콜롬비아 페소화가 특히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노무라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아르헨티나 페소화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터키 리라화, 파키스탄 루피화, 스리랑카 루피화, 이집트 파운드화, 우크라이나 그리브나화 등 7개국 통화의 하락 여지가 높다고 분석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