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고소득층 세금 올려도
사전 양해 한마디 없는 정치
1대 99로 분열 선동하는 사회
누가 성공하는 부자 꿈꾸겠나"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일 국세청 자료를 하나 공개했다. 지난해 법인세를 신고한 기업 중 상위 0.1%에 해당하는 695곳의 소득금액이 흑자기업들의 전체 소득 대비 54%에 이른다는 것, 또 하나는 이들 기업의 법인세 납부액이 총 법인세의 63%에 달했다는 것이다. 심 의원 측은 이를 토대로 기업 소득의 격차, 다시 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양극화에 대한 방점은 ‘세금’이 아니라 ‘소득’에 찍혔다. 세금은 소득의 결과물이니 무리한 전개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금을 많이 낸 해당 기업들에 썩 유쾌한 논법은 아니었다. 박수를 받을 일이 정치인의 ‘양극화 논법’ 재료로 활용된 것 아니냐는 반응이 적잖았다.

납세 양극화는 국민들의 짐작이나 상식선을 훨씬 넘어서 있다. 2016년 기준으로 법인세를 한푼도 내지 않은 기업은 전체의 48%인 30만9000개에 달했다. 반면 상위 5% 기업이 납부한 법인세액은 전체의 94%에 달했다. 개인 소득세도 마찬가지. 상위 5%가 전체 세금의 59%를 담당했다.

돈을 많이 버는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는 그렇게 걷은 돈으로 국가를 유지·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고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생계를 돌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재정원칙은 ①누구로부터 ②어떻게 걷어 ③어디에 쓸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인 만큼 대부분 국회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이 대목에서 포퓰리즘이 여야를 막론하고 기승을 부린다. 우리 정치권은 이 재정원칙의 빈 칸을 ①부자로부터 ②약탈적으로 걷어 ③복지재원 등으로 충당한다고 메우고 있다. 이른바 ‘부자증세’다.

부자증세의 최대 장점(?)은 세금을 손쉽게 걷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조세저항을 하기가 어렵다. 대기업들과 고소득층은 소수로 고립돼 조직화가 불가능하고 날로 정교해지는 징세행정에 소득과 재산을 숨기기도 용의치 않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는 찾아볼 수가 없다.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을 올리거나 종합부동산세를 인상하는 경우에도 사전에 한마디 양해를 구하는 일이 없다. 그래도 부자들은 말이 없다.

‘1 대 99 사회’라는 논법은 열심히 일하는 부자들까지 악마화하고 있다. 천민자본주의의 수혜자로 싸잡아 손가락질을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조차 지난달 강북 옥탑방 생활을 정리하면서 이 논법을 들고나왔다. 1%의 탐욕스런 부자들이 99%의 선량한 서민들을 약탈하고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그가 주창하고 있는 강북 개발이 완료되면 대기업에 떠밀려 사라졌다는 동네 전파상과 양장점, 구멍가게들이 잘 정비된 시가지에 다시 들어설 것이라는 얘긴가.

부자증세를 앞세우는 정치인들은 우리 사회를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서민, 강자와 약자로 갈라버린다. 이를 통해 계층 간 갈등을 조장하고 정치를 타락하게 만든다.

부자들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조장하고 약탈적 세금을 정당화하는 사회의 젊은이들은 건강한 꿈을 갖기가 어렵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목표를 삶의 좌표로 삼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세금을 많이 걷는 길은 부자를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다. 최근 몇 년간 세수가 계속 늘고 있는 것도 기업과 개인 소득이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 세금을 많이 내는 애국자를 존경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겐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자세도 가르쳐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낸 세금으로 자신의 생계나 노후를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떳떳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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