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한반도 북방경제
(1) 중·러 '新밀월 바람'

中·러 접경지대 훈춘~크라스키노를 가다

한·중·러 각축 자루비노港
中, 동해 진출 교두보 점찍어
훈춘~자루비노~부산 항로 개척
러, 곡물터미널 개발 청사진
韓도 크루즈페리 시범 운항

중·러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일대일로-동방정책 이해 일치
시베리아 에너지 亞·太 운송할
복합물류망 구축사업도 활발
남북경협 향방에 복잡한 변수

러시아 극동 제1의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유라시아 정책을 완성할 핵심 교두보다.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기념해 완공된 골든브리지 위로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 다리는 11일 루스키섬에서 개막하는 동방경제포럼 방문 차량들로 가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동휘 기자

훈춘국제버스터미널의 고위관리인 조선족 고씨는 1990년대 초 사범대에서 배운 러시아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중국에서 생필품을 사가려는 러시아 관광객이 밀려들어서다. 고씨는 “버스도 중국산 최신식 이층버스로 작년 말에 바꿨다”고 말했다.

중국 훈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소도시 크라스키노도 중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한국의 민통선과 비슷한 이곳은 불과 2~3년 전만 해도 민간인 출입이 쉽지 않았다. 중국으로선 불과 15㎞(직선거리)를 앞두고 동해 진출을 봉쇄당한 통한의 땅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훈춘세관을 최신식으로 바꾸고, 올해 훈춘~블라디보스토크 고속철을 착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적에서 동지로 변한 중·러

10여 년 전만 해도 중·러는 서로를 견제했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극동개발을 원하는 러시아, 동북3성 발전전략을 추진 중인 중국은 북방경제 탄생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러시아 극동은 국가 간 글로벌 물류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현장이다. 자루비노항이 대표적인 곳이다. 훈춘을 넘어 크라스키노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항구인 이곳은 중국이 동해로 나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고 점찍은 곳이다.

중국은 이미 2015년 5월 훈춘~자루비노~부산항을 오가는 정기항선을 개척했다. 지린성에 본사를 둔 ‘해상실크로드’라는 이름의 해운회사가 운영 주체다. 65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다용도 컨테이너선인 MSR호는 중국에서 생산된 물건을 육로로 훈춘에서 러시아 자루비노항으로 옮긴 뒤 부산항으로 운송한다.

중국이 동해로 나가기 위한 교두보로 자루비노항을 택한 것은 북한 핵개발과 국제 제재로 인한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다. 중국은 나진, 청진항 등 북한의 주요 동북항을 개발하려 했으나 물자 반입이 금지되면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무위로 보냈다. 중국은 러시아의 극동항만투자기업인 숨마그룹과 공동으로 자루비노항 개발 투자를 계획 중이다.

한국의 DBS크루즈페리도 일본 돗토리현과 함께 동일 노선 시험운항을 올 4월 처음으로 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출발한 화물이 자루비노항을 거쳐 중국 동북 3성으로 들어가는 루트의 매력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러시아 극동개발부도 자루비노항을 곡물터미널로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성원용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는 “하역비용과 지리적 조건 등을 감안하면 나진항이 자루비노항보다 잠재력이 뛰어나다”면서도 “러시아 극동지역의 급격한 변화는 남북경협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매우 복잡한 변수를 생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방경제 주도권 쥐려는 러시아

중·러 관계는 역사상 가장 긴밀한 순간이라고 할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중국 헤이룽장성의 국경도시 헤이허(黑河)와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 사이엔 ‘국경대교’가 건설되고 있다. 내년 개통 예정이다. 헤이룽장성과 인접한 우수리스크 일대엔 접경개발지구라는 특구를 지정해 무관세 혜택을 부여할 정도다. 연해주 일대의 풍부한 농산물을 중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전진기지다.

‘프리모리예 프로젝트’로 불리는 양국 간 복합물류망 구축사업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시베리아에 매장된 에너지를 아시아태평양 시장으로 운송하기 위한 철도, 자동차, 항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확보해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완성하려는 중국과 극동개발을 위해 약 9550억원(약 8억4600만달러)의 예산을 배정하는 등 신유라시아정책을 펼치고 있는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다.

일본도 극동개발 경쟁에 뛰어들 태세다. 러시아는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되자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일본 홋카이도까지 연결하는 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러시아 극동개발공사의 미하일 레보츠킨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블라디보스토크 자유무역지대에 입주하려는 외국기업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일본 기업은 곡물 분야에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최원보 롯데상사 연해주농장 법인장은 “극동 연해주에서 생산되는 콩, 옥수수 등의 최대 구매자는 일본 종합상사들”이라고 했다. 전명수 국립블라디보스토크 경제서비스대 객원교수는 “한반도 평화는 북방경제라는 큰 그림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이라면서도 “한국은 북방경제권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면 후발주자”라고 지적했다.

자루비노·블라디보스토크=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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