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시장 문제를 시장 논리로 해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장 효율을 극대화하는 ‘완전경쟁시장’의 오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블록체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블록체인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시장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는 시장혁신 기술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8일 KAIST(한국과학기술원) 홍릉캠퍼스에서 열린 ‘제20회 서울 이더리움 밋업’ 자리에서다.

정부 개입 최소화, 규제 완화 등을 내걸었지만 빈부격차 확대로 시장 참여자들의 지지를 잃은 신자유주의 경제를 넘어 참여자들이 직접 완전경쟁시장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시장 효율성을 확보할 수단으로 블록체인을 주목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정우현씨(사진)는 “시장의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향상되지만 부의 집중과 불균형 확대로 참여자들이 생산성의 과실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그동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성장하니 부작용을 감수하자는 논리가 통했지만, 저성장으로 접어든 지금은 그 힘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블록체인은 시장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기술이다. 최적의 효율성을 지닌 시장을 참여자들이 직접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장이 급진적이지만 논리는 명료하다. 완전경쟁시장으로 작동하는 시장을 직접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고전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구축한다고 주장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시장 참여자들이 시장을 직접 만들 수는 없다.

이러한 한계 탓에 정부가 규제, 정책 등을 통해 시장에 개입해왔다. 케인즈주의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좀 더 ‘급진적인 시장’이 형성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저명한 예일대 법대 교수인 에릭 포스너와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1년 만에 마친 천재로 유명한 글렌 웨일도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가령 ‘A와 B가 공동 설립한 합작기업을 청산한다면 누가 얼마에 지분을 팔아야 하는가’가 문제라고 하자. 현실에서는 쉽게 해결되지 않지만 이들은 공동 집필한 ‘급진적 시장(Radical Markets)’에서 합리적 대안을 내놓았다.

이들은 양측이 각각 지분 가격을 매기고 그 평균을 산출한 다음, 낮은 가격을 제시한 이가 평균 가격에 지분을 매각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지분을 매각하는 쪽은 당초 생각한 가격보다 비싸게 팔 수 있으며 매입하는 쪽도 싸게 살 수 있다.

부동산 문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부동산 소유자가 부동산 가격을 실시간 공개하고 그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이가 있다면 무조건 판매하면 된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없도록 공개 가격을 기준으로 매년 세금을 내야 한다고도 했다. 이 방법에 따르면 독점에 의한 가격 상승을 방지하면서 완전경쟁시장의 최적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에릭 포스너와 글렌 웨일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머무른다. 그런 시장을 만들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건이 충족될 경우 거래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블록체인의 스마트계약을 적용하면 현실에서도 구현 가능하다. 이때 참여자들이 스마트계약을 설정하는 것은 시장의 작동 원칙을 직접 만드는 것을 뜻한다. 효율성 극대화 시장을 참여자가 직접 설계하는 셈이다.

정씨는 “이렇게 보면 블록체인의 근저에 깔린 것은 시장근본주의”라며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려 정부와 같은 외부의 힘이 작용했지만 효율성이 저하되고 관료주의와 부패 등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시장 안에서 시장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록체인은 중간자를 최소화하고 효율을 극대화해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고 여겨진 완전경쟁시장을 구현할 수 있는 강력한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 블록체인에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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