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스토리

7080 가구업계 호령한 위씨 일가
보루네오 바로크 동서가구
무리한 해외진출과 IMF로 가구업계서 퇴장

'침대는 과학' 내세운 에이스
경쟁자 잇따라 제거하며
'안씨 집안' 시장 30% 점유

비용·고객·경쟁자 등 경영전략의 핵심요소에 집중

안성호 에이스침대 대표

20여 년 전 외환위기는 한국 재계 지도를 바꿔놓았다. 가구업계도 마찬가지였다. “가구업계의 도요타가 되겠다”던 보루네오(위상식)를 비롯해 동서가구(위상균) 바로크가구(위상돈) 등 위씨 3형제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도 이때였다. 바로크가구가 최종 부도난 것이 마지막 사건이었다. 무리한 해외 진출과 외환위기 고비를 넘지 못하고 1990년대 말 모두 무대에서 퇴장했다.

반면 위씨 형제들과 함께 1980년대부터 황금기를 누린 침대업체 에이스침대 안유수 회장 집안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 1위인 에이스침대와 2위 시몬스는 각각 안 회장의 장남(안성호)과 차남(안정호)이 운영하며 국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두 집안의 명암을 가른 것은 전략이었다고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7080 ‘위씨천하’ 시대

안정호 시몬스 대표

1966년 설립된 보루네오가구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가구업계 1위 자리를 지켰다. 창업자는 위상식 회장. 동생 위상균 씨는 보루네오가구 공장장을 하다 1973년 동서가구를 설립했다. 이어 막내인 위상돈 씨는 1978년 바로크가구를 설립해 독립했다. 이들은 가구시장의 1~3위를 독식했다. ‘삼위일체(三韋一體)’ ‘위씨천하’란 말이 나왔다. 보루네오가구의 장롱은 신혼부부 혼수감 1순위였고, 바로크가구가 내놓은 ‘대발이장롱’은 없어서 못 파는 히트상품이었다.

보루네오는 국내 처음으로 1970년대부터 가구 자동화 생산 설비를 들여와 대량생산 시스템을 구축해 외형을 키웠다. ‘자개장’ 중심이던 국내 장롱시장에 서구식 가구를 처음 들여온 회사도 보루네오였다. 위씨 형제들은 신도시 건설로 아파트가 급증하는 시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꿈을 키운 것이 화근이었다. 선두주자 보루네오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10여 개 직영점을 냈지만 생활습관과 주거환경이 달랐던 해외에서는 성과를 내기 힘들었다. 이는 유동성 위기로 이어졌다. 보루네오는 1992년 부도가 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치열한 경쟁과 외환위기는 동생들의 회사도 집어 삼켰다. 신도시 건설 등으로 수요가 늘자 다른 가구업체들도 설비를 늘려갔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신도시 입주가 마무리되자 과잉 공급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출혈경쟁을 하던 기업들의 적자가 이어졌다. 이후 외환위기는 치명적 타격이 됐다. 동서가구는 유동성 위기를 넘지 못하고 부도를 냈다. 1998년 바로크가구 역시 부도를 맞았다. 이후 위씨 삼형제는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고 무대 뒤안길로 사라졌다.
위씨 일가가 경영에서 손을 뗀 뒤 보루네오는 험난한 길을 걸었다.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의 먹잇감이 됐다. 2012년부터 6년간 최대주주가 13번 바뀌는 굴욕을 겪었다.

◆성장 거듭하는 안씨 일가

반면 침대업계의 대표적인 형제 집안인 안씨 집안은 승승장구 중이다. 1963년 안유수 회장은 “‘침대 단일품목’으로 승부를 보겠다”며 에이스침대공업사를 설립했다. 88올림픽 전후 일산 분당 등 신도시가 개발되고, 한국인들의 소득 증가로 편안한 잠자리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침대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80년대 후반 에이스는 1위에 올랐다. 이후 에이스는 1위 자리를 한 번도 다른 업체에 내주지 않았다. 안 회장은 2002년 1위 에이스침대는 장남 안성호 사장에게, 2위 시몬스는 차남 안정호 사장에게 각각 맡겼다. 지금도 침대시장의 30% 이상을 안씨 형제가 차지하고 있다.

안씨 일가가 위씨 형제들과 달리 국내 침대 시장을 계속 지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비용(Cost) 고객(Customer) 경쟁자(Competitor)’라는 경영전략의 핵심 요소를 철저히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침대 하나에 집중함으로써 다른 가구회사보다 물류나 생산, 재고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비용절감은 높은 이익률로 이어졌다. 고객에 대한 이해는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광고에서 드러난다. 이 캠페인은 소비자를 가구로부터 분리시켰다. 침대는 전문업체 제품을 써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소득이 늘자 소비자들은 더 비싼 값을 에이스에 지급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마지막은 경쟁자. 에이스침대는 경쟁자를 없애는 전략을 썼다. 1992년 최대 경쟁자인 시몬스(한국 독점 판매권)를 인수해 버렸다. 2002년 안유수 회장은 에이스와 시몬스를 두 아들에게 물려주면서 시장 점유율 3위였던 썰타침대와 브랜드 라이선스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대진침대와의 라이선스 계약이 끝난 직후였다.

잠재적 경쟁자를 모두 자사의 하위 브랜드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이후 한국 침대 시장은 에이스와 시몬스의 ‘형제간 경쟁’만 남게 됐다. 최근 한샘 등 다른 가구업체와 렌털 업체, 싼값에 고급 제품을 판매하겠다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해외 업체 등이 침대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브랜드파워, 시장지배력 등에서 아직 안씨 형제에 비할 업체가 없는 게 현실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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