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간편식, 대한민국 밥상을 바꾸다
(1) 5060 HMR 소비 급증

편의성과 가격 경쟁력이 장점
즉석죽 2년간 年 57%씩 성장
55세 이상 김치 구매도 150%↑

요리시간 줄며 취미·운동시간↑
5060세대 아침풍경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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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녀를 모두 결혼시킨 김만석 씨(68) 부부는 얼마 전부터 평일 아침 식사를 밥 대신 죽으로 바꿨다. 간편식 전복죽을 전자레인지에 2~3분 데워서 간단히 먹은 뒤 집 근처 스포츠센터로 향한다. 운동 후 집으로 돌아와 곤드레비빔밥과 육개장 등 가정간편식(HMR)으로 5분 만에 차린 점심을 먹는다.

HMR로 식사를 하기 전까지 부부의 아침 풍경은 이와 완전히 달랐다. 김씨의 부인은 손목과 허리가 아파 늘 병원을 다니면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저녁에는 장을 볼 때가 많았다. 김씨는 “국이나 탕, 찌개까지 간편식을 이용하면서 아내와 함께 운동하고 취미 생활을 할 시간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HMR을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HMR시장 큰손은 5060

HMR이 중장년층과 실버층 가구의 식탁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칸타월드패널이 올 상반기 전국 5000가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55세 이상 가구의 HMR 구매가 크게 늘었다.

55세 이상 가구의 즉석밥, 국 또는 소스가 결합된 ‘컵반’의 3년간 성장률은 각각 118%, 190%에 달했다. 지난 6월 기준 ‘1년 안에 구매 경험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 27.7%가 ‘그렇다’고 답했다. 노동 강도가 높은 김장을 하는 가구도 줄면서 55세 이상 가구의 포장김치 연간 구매 금액은 150억원이었다. 3년 전 60억원에서 150% 증가한 금액이다.

한국인의 식탁은 밥, 국, 김치가 핵심이었다. 55세 이상 가구가 HMR 시장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건 2~3년 전부터다. 초기 HMR 시장을 20~30대가 이끌었지만 HMR 시장에 국, 탕, 찌개 등 한식 제품군이 다양해지면서 중장년층이 빠르게 가세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육개장, 이마트의 피코크 한우곰탕, 동원F&B의 양반 버섯된장찌개 등이 대표적이다.

초고령사회 영양 불균형·노인복지 해법
중장년층의 HMR 소비는 편의성과 가격 경쟁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2017 간편식 세분시장 현황’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HMR을 사먹는 이유는 ‘조리하는 과정이 간편해서’라는 응답이 31.1%로 가장 높았다. ‘집에서 해먹기 어렵거나 번거로운 음식이라서’라는 응답이 13%로 뒤를 이었다.

HMR은 고령사회의 먹거리 해법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한국은 지난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14%를 넘어서며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1인 가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도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23.2%였던 1인 가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25년 29.7%, 2045년 45.9%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HMR은 조리에 드는 시간과 노동력 등을 환산했을 때 직접 요리를 해먹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외식보다 가격도 싸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냉면을 HMR로 구매할 경우 1인분에 3904원인 데 비해 외식을 하면 평균 8808원이 지출됐다. 삼계탕은 6304원으로 집에서 HMR로 즐길 수 있는 데 비해 외식을 하면 1만4231원이 들었다. 김치찌개 가격도 3580원(HMR)과 6000원(외식)으로 차이가 났다.

커지는 죽·연화식 시장

시니어의 HMR 소비가 늘면서 소화가 편하고 씹기 쉬운 간편식 시장도 커지고 있다. 죽, 수프, 씹기 편하게 가공된 연화식(軟化食) 등이 대표적이다. 즉석죽 시장은 지난 2년간 연평균 57%씩 성장해 올해 약 800억원대로 전망된다. 1992년 국내 최초로 ‘양반죽’을 출시해 즉석죽 시장을 연 동원F&B는 최근 광주 공장에 9917㎡(약 3000평) 규모의 죽 생산라인을 준공했다. 아워홈, 현대그린푸드는 연화식 제품을 이미 내놨고, 하림과 CJ제일제당 풀무원 매일유업 등도 이 시장에 곧 진출한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국물이 많은 한식이 냉장이 아닌 상온 보관 HMR로도 좋은 품질을 갖게 되면서 20~30대뿐만 아니라 50~60대까지 소비층이 늘고 있다”며 “집 안에서 조리하는 것에 익숙한 중장년층은 외식 대신 HMR 소비를 점점 더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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