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항공·우주에 인생 걸 수 있는 '크레이지 보이' 더 많이 나왔으면"

우주로 쏘아올린 산골소년의 꿈
'달 착륙' 계기로 막연한 호기심 키워
학부 시절부터 항공·우주 분야만 공부
佛 정부가 주는 특별 장학금 받아 유학

과학은 공상이 아닌 현실
발사체 연구직, 폭발 위험 안고 실험
美 NASA의 30% 수준인 예산 속에서도
'세계 최초' 무인 수직 이착륙기 개발

내달 '우주개발' 첫 시험대
한국형 발사체 '누리' 시험 발사
"나로호 실패로 경험…성공 위해 최선"
민간기업이 우주산업 주도하는 시대 임박
박사급 이상 전문가 양성에 주력해야

임철호 원장이 아리랑3A호(왼쪽)와 누리호 모형을 들고 항공우주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고등학교에 다니던 1969년 여름이었어요.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에 집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닐 암스트롱이란 미국 사람이 달에 갔다고 하지 뭐예요. 그게 가능한가 싶고, 우주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날 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웠어요.”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 소식을 라디오로 접했던 전북 진안의 산골 고교생은 우주를 꿈꾸며 자라났다. 나라를 대표하는 항공·우주 분야 과학자가 됐고, 지금은 ‘한국의 NASA(나사·미국항공우주국)’로 불리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을 이끌고 있다. 지난 1월 취임한 임철호 항우연 원장(66) 얘기다.

임 원장을 만난 곳은 대전 대덕연구단지 인근의 한정식집 이계원이었다. 그는 막걸리 잔을 채우며 자신을 “전라북도 깡촌 촌놈”이라고 소개했다. “무주와 제 고향 진안, 장수를 한꺼번에 묶어서 ‘무진장’이라고 불러요. 무진장 시골이란 얘기예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장 중 임 원장만큼 경력이 ‘한결같은’ 인물도 드물다. 서울대 공대 학부 시절부터 항공·우주 분야만 공부했다. 항우연에 몸담은 기간은 25년에 달한다. “가난한 집에선 6년씩 공부해야 하는 의대에 못 보내던 시절입니다. 결국 마음이 끌리는 전공을 고른 게 이 분야예요. 주변머리가 없어서 그런지 평생 한 우물만 팠네요.”

그는 이계원의 별미인 보리굴비를 권하며 수더분한 말투로 옛날 얘기를 풀어놨다. 첫 선택의 기로는 서울대 공대 대학원을 마친 뒤 찾아왔다. 막 방위산업을 시작한 대우중공업에 뜻을 두고 입사시험까지 치른 상황이었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오니 대학원에서 공부한 것을 써먹을 데가 없다는 선배들의 푸념이 자꾸 신경 쓰였다.

고심 끝에 임 원장은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 그의 선택지는 항공·우주 강국이었던 미국과 프랑스였다.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못했음에도 그는 프랑스를 골랐다. 임 원장은 “솔직히 유학비를 대줄 만큼 집에 여유가 없었다”며 “장학금만 지원하는 미국보다 비행기표에 생활비까지 대주는 프랑스가 끌렸다”고 털어놨다.

임 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세운 외교채널 다변화 정책의 수혜자다. 당시 정부가 1973년 막 개발된 에어버스 항공기 6대를 들여온 게 변화의 단초였다. 에어버스는 프랑스와 독일, 영국, 스페인 유럽 4개국이 공동 개발한 야심작이었지만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한국의 전향적인 결정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에어버스로 벌어들인 수익금 중 일부를 한국 유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놨다. 이 프로그램으로 프랑스를 다녀온 정부 장학생은 50여 명. 국내 항공·우주 분야 전문가 중 프랑스 유학파가 많은 배경이다.

프랑스의 항공·우주 관련 교육기관은 에어버스 본사가 있는 남부 도시 툴루즈에 몰려 있다. 그가 전문석사 학위를 딴 국립항공우주대, 박사 학위를 취득한 폴사바티에대도 마찬가지다.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지역이지만 낭만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고 한다.

“프랑스어는 통 못 알아듣겠고 공부는 어려웠어요. 성과를 못 내면 지원금이 끊어져서 귀국 비행기를 타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프랑스 정부가 유학생에게 지급한 생활비는 지금 돈으로 월 20만원에 불과했다. 임 원장은 “가까스로 밥 사먹을 돈은 되는데 와인 마실 여력이 없었다”며 “프랑스까지 가서 본토 와인 맛을 제대로 못 본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귀국 후 임 원장은 묵묵히 학자의 길을 걸었다. 국내에선 직접 항공기 또는 우주선을 제작하는 기업이 없다 보니 학계 외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1994년 항우연에 합류한 그는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진두지휘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일로 2007년 진행된 스마트무인기 개발 프로젝트를 꼽았다.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수직 이착륙기를 항우연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조종사 없는 무인 수직 이착륙기를 제조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다.

임 원장은 “위에서 시킨 게 아니라 항공·우주 분야 과학자가 모여 자발적으로 한 사업”이라며 “한국도 항공·우주 분야의 ‘세계 최초’ 기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는 게 뿌듯했다”고 강조했다.

항공·우주 분야를 얘기할 때 일반인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최첨단 장비가 빼곡히 들어선 NASA의 연구실이다. 우주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는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를 연상하는 사람도 많다. 한마디로 ‘폼’ 나는 분야로 비친다.

막걸리를 한 모금 걸친 임 원장은 “소문이 잘못 나도 크게 잘못 났다”고 손사래를 쳤다. “우리 분야는 학계에서도 손꼽히는 ‘3D’예요. 발사체를 연구하는 친구들은 1년 중 절반을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장에서 살아요. 까딱하면 다치거나 죽을 수 있는 폭발실험을 매일 하죠.”

그는 “드론(무인항공기)을 담당하는 연구원들도 늘 땡볕 아래에서 일하기 때문에 죄다 얼굴이 새카맣다”며 “연구원을 통틀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항우연을 운영하며 어려운 점이 있는지 묻자 “예산”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미국은 NASA를 독립기관으로 운영하며 연간 20조원 정도 예산을 배정한다. 미국이 화성 탐사처럼 당장 ‘돈’이 되지 않는 프로젝트를 활발히 진행할 수 있는 이유다. 일본도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에 2조원 정도를 투입한다. 항우연 예산은 600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항공 부문에서 민간 기업에 지원해야 하는 자금과 인건비를 빼면 남는 게 많지 않다.
임 원장은 “과기정통부 산하 25개 연구기관의 연구원 연봉을 따지면 항우연이 꼴찌에서 세 번째”라며 “항공·우주 분야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항우연을 고집하는 ‘크레이지 보이’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수준의 성과도 내놓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후식이 나올 때쯤 항우연의 현안으로 주제가 바뀌었다. 올해 가장 중요한 사업은 다음달 25일로 예정돼 있는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시험발사다. 러시아 기술력에 의존했던 나로호와 달리 누리호는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 길이 26m, 무게 52t인 1단 로켓을 시험한다. 이번 발사의 목적은 발사체 기술에 허실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시험발사가 성공하면 2021년 무렵 누리호에 위성을 실어 우주로 보낼 예정이다.

그는 누리호 얘기를 꺼내며 자신을 “일복이 따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누리호와 달 궤도선을 포함해 3년 임기 동안 여덟 번의 발사를 책임져야 해서다.

“항우연 원장을 맡았던 선배 중에는 발사 한 번 안 하고 임기를 마친 분도 많아요. 솔직히 부담스럽죠. 요즘처럼 발사가 임박하면 밤에 잠도 안 옵니다.”

임 원장은 “발사 성공 확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늘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국민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봐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로호 발사에 잇따라 실패하며 ‘죄인’ 취급을 받았던 2009년과 2010년의 트라우마가 아직 생생하다는 설명이었다.

항우연이 슬슬 ‘시즌2’를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는 “10년 정도 지나 발사체와 인공위성 국산화 작업이 끝나면 민간 기업들이 우주산업을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항우연이 NASA처럼 화성 탐사에 나설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걸을지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공·우주 인력을 키우는 시스템 역시 손봐야 한다고 했다. 전국 20여 개에 달하는 항공·우주학과는 대폭 줄이고 대신 박사 이상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리랑 1~5호 발사… 항공·우주 핵심기술 연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은 항공·우주 과학기술에 대한 탐구, 기술 개발 및 보급을 통해 한국 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국민 생활 향상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1989년 10월 설립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 중 하나다. 항공기와 인공위성, 우주발사체 시스템 및 핵심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정부의 항공·우주개발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성과로 국내 최초 실용 위성인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1~5호 발사, 한국 최초 액체추진과학로켓(KSR-Ⅲ) 발사, 통신해양기상위성(천리안) 발사, 스마트무인기 개발,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Ⅱ) 발사 등이 있다.

△1952년 전북 진안 출생
△1975년 서울대 항공공학과 졸업
△1977년 서울대 항공공학 석사
△1983년 프랑스 국립항공우주대 항공우주공학 전문석사
△1986년 프랑스 폴사바티에대 기계공학 박사
△1994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2011년 한국항공우주학회 회장
△2012년 국제항공연구포럼 한국대표
△2018년 1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임철호 원장의 단골집 이계원한정식
꼬들한 보리굴비와 나물반찬 '정갈한 한상'


보리굴비로 유명한 대전의 손맛 좋은 한정식집이다. 합리적인 코스 가격과 운치 있는 한국식 인테리어가 강점이다. 가족 모임 및 회식 장소로 두루 인기가 좋다. 대전 공무원들이 즐겨 찾는 식당이기도 하다. 홀은 없고 각각의 방으로 이뤄진 실내 구조여서 조용하게 식사와 대화를 할 수 있다.

주력 메뉴인 굴비 정식은 짭조름한 보리굴비를 메인 메뉴로 해서 각종 나물 요리와 황태 양념구이, 전복 술찜, 잡채 등이 함께 나오는 코스다. 보리굴비는 간이 세지 않고 부드러운 편이어서 남녀노소 부담 없이 먹기에 좋다. 흰 쌀밥에 얹어 다른 나물 반찬과 곁들이면 소박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풍미를 즐길 수 있다. 가격은 점심 기준 2만5000원, 저녁 기준 3만원이다.

회식이나 가족 모임을 할 때에는 이 집의 자랑인 ‘산해진미 코스’를 추천한다. 3만5000~7만원으로 가격에 따라 떡갈비와 신선로, 회 등이 추가로 나온다. 보리굴비는 기본이다. 간소한 ‘가족스페셜 메뉴’는 점심 2만원, 저녁 3만원이다.

대전=송형석/윤희은 기자 clic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에서 스타트업과 과학을 담당하는 송형석 기자입니다.
스타트업과 가상화폐, 과학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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