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 이사장 master@w-jewel.or.kr >

고약했던 여름의 무더위도 처서를 지나면서 한풀 꺾였다. 아침, 저녁으로 확연히 선선해졌다. 찌는 더위에는 쳐다보기도 싫던 칼국수가 갑자기 먹고 싶어 지난 주말 유명한 칼국수집을 찾았다.

그런데 옆 테이블의 가족이 나누는 대화가 나를 안타깝게 했다. 티격태격하는 대화 끝에 엄마는 아들에게 “너 때문에 주말 점심시간을 다 망쳤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애가 저렇게 될 동안 뭘 했냐, 다 네 탓”이라고 나무랐다. 아들은 아빠한테 “그러게 집에서 안 나온다고 했는데 부모님 때문에 항상 이렇다”고 하고는 대화가 없어졌다.

주말 오후 가족끼리 칼국수 한 그릇 먹는 상황에서조차 이렇게 ‘남 탓’이 난무하는데 우리 사회생활에서는 얼마나 많은 남 탓이 존재하고 있을까?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 탓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다시 문제로 돌아오는 데 시간만 더 걸릴 뿐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자신의 가난과 허약함, 못 배운 것을 하늘로부터 받은 세 가지 은혜라고 했다. 그는 가난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했고, 허약해서 건강을 돌보며 90세가 넘도록 살았고, 못 배운 탓에 항상 배우려고 노력했다.

나 또한 인생을 살면서 결핍에서 오는 절망을 느껴봤고, 동시에 결핍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가져다주는 위대함에도 공감해왔다. 지금, 우리는 결핍의 시대를 살고 있다. 대화의 결핍, 금전적 결핍, 감정적 결핍 등등. 하지만 모든 것에 남의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나의 탓으로 돌리고 문제의 본질을 찾으려 노력하면 해답은 반드시 나타난다.

‘남 탓’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 문제를 외면하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난 것 같이 느껴져도 그 상황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자기 자신도 그냥 그대로인 것이다. 핑계를 대고 불평하면 할수록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더 쉽게 메워버리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봐도 고칠 것이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앞에 놓인 많은 숙제를 그저 남 탓을 하며 문제로 치부하는 건 어리석다. ‘북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다’는 스칸디나비아 속담처럼 어떤 어려움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했으면 한다. “내 탓이고, 네 덕이다”라는 말을 모두가 한 번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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