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송환" 불응에 美 목사 구금한 터키
트럼프 '관세폭탄'에 경제 붕괴 일보직전
중동지역 역학구도상 곧 돌파구 찾을 것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

70년을 함께해온 미국과 터키 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맹방이 경제전쟁에 돌입했다. 카리스마 강한 두 통치자의 오기 싸움에 민감한 종교적 감성까지 깔려 있어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펫훌라흐 귈렌이라는 유력한 터키 종교지도자를 20년째 보호하고 있다. 그는 한때 존경받던 이슬람 종교지도자로, 터키는 물론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백만 명의 추종자를 거느린 히즈메트(HIZMET·봉사) 조직을 이끌었다. 이 조직은 세계에 1000개 이상의 학교를 운영하는 최대 교육 비정부기구(NGO)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발전당과 손잡고 집권한 공동 정권의 한 축이기도 했다.

귈렌은 2013년 이후 에르도안과 결별했으며, 지금은 2016년 7월15일의 실패한 터키 군부 쿠데타의 주모자로 몰려 터키의 강한 송환 요구에 직면해 있다. 터키 정부는 그를 정부 전복 음모의 배후세력으로 보고 그와 추종자들을 테러리스트로 분류해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귈렌의 쿠데타 연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터키의 강제송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양국은 최근 들어 시리아 내전 해법을 둘러싼 갈등, 반(反)터키 성향의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에 대한 미국의 지원 등 가장 험악한 긴장상태에 있다. 급기야 터키 정부는 이즈미르에서 20여 년간 목회 활동을 해온 복음주의 기독교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귈렌 조직을 도운 간첩 혐의로 체포해 버렸다. 이에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직접 석방 교섭을 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브런슨 목사의 석방이 이뤄지지 않자 두 정상 간의 독설은 도를 넘었고 경제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산 알루미늄과 철강 제품에 2배 이상의 관세 부과를 공언하며 본격적인 경제보복을 행동으로 옮겼다. 터키 경제는 요동쳤고, 터키 리라화는 달러당 4.5리라에서 한때 7.2리라까지 평가절하되면서 외환위기까지 겹쳤다.

에르도안도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의 일방적이고 고약한 버릇을 고쳐주겠다”며 러시아와 중국에 밀착하면서 신국제질서를 들고 나왔다. 국내에서는 금과 달러 팔기 캠페인을 벌이고,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대안으로 중앙아시아 역내 튀르크 공화국들과 공동으로 화폐 단일화를 논의하는 한편, 이란 카타르 등과 비(非)달러화 결제를 강화하기로 하는 등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를 버리고 러시아의 S-400 방어체제를 전격 도입하면서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항한 군사동맹체 NATO의 맹방인 터키가 러시아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스스로 도입했다는 자체가 큰 충격이다.

카타르가 150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하고,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하면서 리라화는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지만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터키 경제의 근원적인 문제 해결은 어려워 보인다. 현재로서는 공식적인 협상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감정적인 관망 상태에서 물밑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두 나라 관계가 파국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이 약하다. 우선 시리아 내전이나 이란 핵문제, 중동 테러리즘, 시리아 난민 문제 등에서 미국은 터키의 협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터키를 배제한 미국의 중동 역학구도가 정착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당장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의 중요한 전략 거점인 이들립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터키 양국 간 군사협력이 발등의 불이 됐고, 이란 제재에서도 이란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터키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미·터키 관계는 파국에 이르는 대신 브런슨 목사 석방을 계기로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퇴와 함께 미국·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협력축에 맞서는 새로운 냉전축의 구축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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