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마다 신의칙 적용기준 제각각
기업 통상임금 우발채무 불안 여전
대법원의 구체적 기준 결정 '시급'"

이상희 <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노동법학 >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판결’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해 통상임금 소송대란 문제를 진정시켰다. 그런데 정확히 2년 뒤인 2015년에 통상임금 소송이 다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2013년 대법원 판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 판결은 통상임금 범위의 문제를 정리했다. 하지만 이 기준에 따라 재(再)산정된 추가 소급청구는 제한했다. 사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례는 없었다. 노사는 한정된 임금총액에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것을 전제로, 통상임금과 상여금 등 제수당을 적절히 배분·조절해 인상하는 방식으로 임금협상을 해왔다. 그런데 2012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는 대법원 ‘금아리무진 판결’이 나오자 그간 인상된 상여금 등을 받아온 근로자 측이 통상임금 기준에 대한 합의만 무효임을 주장하면서, 상여금을 넣어 재산정한 추가수당 지급을 청구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 청구가 임금협상 경위 등을 무시하고 협상 당시 생각지 못한 사유를 들어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는 사용자 측에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했다. 그래서 추가수당 지급 청구는 신의성실원칙(信義誠實原則)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 판결은 강행법규를 위반하는 합의는 무효라는 맹목적 법해석에서 벗어나 합리적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 판결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업의 과도한 부담을 이유로 신의칙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정기상여금에 한정하고 노사 간 임금협상 과정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제한적 조건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후속 판결에서 사달이 생겼다. 신의칙 적용 기준에 적지 않은 혼란이 생겼기 때문이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신의칙 적용 기준인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의 요소를 상시초과근로, 실질임금인상률, 당기순손실 정도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후 하급심에서는 기업의 재정이나 경영 상태를 살피는 더 복잡한 고려 기준이 등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적자폭, 부채비율, 신용등급, 수익 가능성, 투자 여건,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사내유보금, 주주현금배당 등 지나치게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사정까지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신의칙 적용 기준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심과 2심의 결론이 달라진 사건이 여럿 등장했다. 공기업은 같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신의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산업현장에서 제2 통상임금 소송대란과 비슷한 혼란이 나타나면서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후 2년 만에 통상임금 신의칙 적용과 관련한 사건이 다시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는 사태로 발전한 것이다. 이후 통상임금 소송의 쟁점은 ‘통상임금에 해당하느냐’가 아니라 ‘소급적 추가지급과 관련한 신의칙 인정여부’로 옮겨졌다. 이에 대한 관심은 2017년 여름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극에 달했다가 지금은 가라앉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안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 통상임금소송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대부분 신의칙 적용 여부 판단의 불확실성에 빠져 있다. 추가소급 청구분이 수년간 추정된 채로 적체돼 기업들은 막대한 임금채무 부담 여부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다.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기대심리에 따라 갈등하고, 기업은 기업대로 막대한 자금이 묶이는 등 경영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하급심 판결에서 신의칙 적용 경향을 어떻게 파악해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신의칙 적용의 구체적 기준을 조속히 결정해 줄 필요가 있다. 수많은 신의칙 소송 관련 노사주체가 혼란에서 빠져나올 기준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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