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출시 전기차에 장착

대형 글로벌 완성차로는 첫 채택
삼성SDI, 헝가리에 생산라인 구축

스마트폰 등 IT기기 두께 경쟁에
각형·파우치형에 주도권 뺏겼지만
전기차 열풍 타고 '원통형' 부활

최근 가격 경쟁력까지 높아져
삼성SDI, 소형 배터리사업 효자로
삼성SDI가 영국 자동차 제조사 재규어랜드로버의 차세대 전기차에 원통형 배터리를 단독으로 공급한다. 테슬라를 제외한 대형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에 원통형 배터리를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SDI의 실적 개선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기존에 생산하던 각형 배터리뿐만 아니라 원통형 배터리로도 전기차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부활하는 원통형 배터리

4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재규어가 2020년 양산을 목표로 추진하는 전기차 프로젝트에 원통형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초기 공급 물량은 연간 5GWh 이상으로 전해졌다. 물량을 생산하기 위해 삼성SDI는 헝가리 공장에 원통형 배터리 생산라인을 건설한다. 헝가리 공장에는 삼성SDI가 전기차에 주로 공급하는 각형 배터리 생산라인만 있다. 헝가리에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이유는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원통형 배터리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수주는 원통형 배터리 수요처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는 각형·파우치형 배터리가 더 각광받고 있지만 사실 리튬이온배터리의 ‘원조’는 원통형 배터리다. 1991년 소니가 워크맨 등을 좀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원통형 리튬이온배터리를 개발했다. 캠코더에 주로 들어가던 원통형 배터리가 전성기를 맞이한 건 노트북 시장이 성장하면서다.

그러다 시장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노트북에는 원통형 배터리 여러 개를 묶은 배터리팩이 들어가는데, 노트북 두께가 얇아지기 시작해 두꺼운 배터리팩을 넣을 수 없게 되면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정보기술(IT) 기기가 점차 얇아지고 소형화되면서 각형·파우치형 배터리로 주도권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원통형 배터리가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놓였던 이유다.

◆‘테슬라 키즈’의 약진
‘찬밥’ 신세였던 원통형 배터리의 명맥은 전동공구 덕에 유지됐다. 보쉬, 스탠리, 블랙앤데커, 마키타 등 글로벌 전동공구 업체들이 무선 전동공구를 제작하면서 원통형 배터리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전기자전거, 무선 청소기, 보조배터리 등에 사용되며 꾸준한 수요를 이어갔다.

그러다 전기차 바람을 타고 원통형 배터리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제너럴모터스(GM), 현대자동차, BMW 등의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각형이나 파우치형 배터리를 채택할 때 테슬라는 원통형 배터리를 적용했다. 테슬라가 원통형 배터리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다. 표준화된 규격을 갖추고 있어 대량 생산이 용이하고 생산 단가가 낮다. 다른 배터리에 비해 충전도 빠르다. 테슬라 전기차 ‘모델S’ 한 대에는 지름 18㎜, 길이 65㎜의 ‘18650’ 규격 배터리가 7000여 개 들어간다.

초반까지만 해도 ‘테슬라 효과’는 이 회사에 배터리를 독점 공급하는 파나소닉에만 돌아갔다. 최근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원통형 배터리를 채택해 전기차를 제조하는 ‘테슬라 키즈’로 불리는 업체들이 생기면서다. 루시드 모터스, 패러데이 퓨처, 피스커 등 ‘제2의 테슬라’ 또는 ‘테슬라 대항마’라고 불리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등장이다. 이들 업체가 원통형 배터리를 채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격 경쟁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규격이 정해져 있는 범용 제품이어서 초기 제품개발 단계에서 수급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시드 모터스는 삼성SDI와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SDI가 재규어에 원통형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게 되면서 원통형 배터리를 포함한 소형 배터리 사업 부문이 ‘효자’ 역할을 할 전망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원통형 배터리 수요 증가로 삼성SDI가 올해 소형 배터리 사업 부문에서 400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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