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위와 현실 혼동하는 '시장盲 정부'
공약 덫에 걸려 통계도 화장할 판
市場과 싸우는 건 정책 아닌 아집"

오형규 논설위원

“외환시장에 가려는데 어디로 가야 하죠?” “한국은행 옆길로 쭉 가면 됩니다.” 예전에 한은을 출입할 때 종종 회자되던 우스갯소리다. 시장 몰이해에 대한 비유다. 증권시장 하면 여의도 증권거래소부터 떠올리듯, 외환시장도 한은 부근 어디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시장(市場)은 좁게는 사고파는 거래가 일어나는 특정 장소지만, 넓게는 ‘재화와 서비스가 거래되는 추상적 영역’을 통칭한다. 수요·공급, 거래정보, 가격, 결제시스템, 법·제도, 관습 등의 총합이 곧 시장이다. 공기처럼 어디든 존재하는 일상 그 자체다. 포로수용소나 난민촌에도 시장이 절로 생겨나는 이유다. 이런 시장을 가로막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막는 것이란 베트남 속담도 있다. 북한 김정은도 장마당 금지가 부질없음을 잘 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마다 꼬여 버린 가장 큰 이유는 청와대가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시장과 친하지 않은 것은 물론, 시장을 부정하고 싸우려 들 때가 많다. 이념적 당위와 경제적 현실을 구분 못하는 ‘시장맹(盲)’에 가깝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자리 정부’라면서 노동시장의 가격(임금) 폭등과 거래비용(고용비용) 증대로 정책을 일관하는 이유가 설명이 안 된다.

부동산 정책에선 시장을 아예 주적(主敵)으로 삼은 듯하다. 어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투기 수요 억제를 위해 더 강력한 후속 대책도 검토하겠다”고 또 선전포고를 했다. 이병태 KAIST 교수의 지적대로 공급 부족에 따른 초과 수요를 투기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허공에 주먹질하는 꼴이다. ‘한은 옆 외환시장’ 식으로 부동산시장을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청와대 참모진은 상인의 현실감각이 결여된 교수 출신이거나, 1980년대 매판·종속이론에 몰입했던 586들이 태반이다. 특정 분야만 판 교수와 한참 전에 공부를 멈춘 586에게 변화무쌍하고 울퉁불퉁한 시장은 버거운 상대다. 하다하다 통계마저 분칠하려 든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교수들은 ‘조감도’ 그리기에 능하다. YS 정부의 ‘신경제 100일 계획’을 짠 경제수석을 비롯해 역대 정부 초대 경제수석, 정책실장이 거의 교수 출신이었다. 하지만 정권마다 교수들에게 경제를 맡겼다가 ‘폭망’한 공통점이 있다. 집권 2년차쯤 테크노크라트로 교체한 것도 비슷하다. 누구든 능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에 앉으면 ‘훈련된 무능’이 도드라진다.

전문 시위꾼도 아닌 소상공인들이 생업을 제쳐놓고 거리로 나섰다. 실업률 최상위에 거제(7.0%) 통영(6.9%) 안양(5.9%) 구미(5.2%) 등 녹슬어가는 산업도시들이 즐비하다. 청년들 꿈이 공무원 되는 것이고, 신혼부부들은 출산 파업이다. 객관적인 경제전문가라면 위기 임계점이 임박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것이다. 물이 넘치는 것은 마지막 한 방울이 더 추가될 때다.

경제를 되살릴 방법은 자명하다. 시장과 기업의 활력이 곧 경제 활성화임을 인정하고, 친(親)시장·친기업으로 운전대를 틀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아무리 반대 증거가 넘쳐도 “경제 정책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 “더 속도감 있게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청와대다. 통계의 화장발·조명발로도 경제 실상을 감출 수 없다.

여당 안의 근본주의 세력은 한 입으로 “재벌 곳간에 800조원이 쌓여 있다”면서 “은산분리 완화는 재벌 사금고화”라고도 한다. 그렇게 재벌이 돈이 넘치면 인터넷은행 돈이 아쉽겠나. 탈(脫)원전과 냉방복지, 덜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등처럼 모순을 모순인 줄도 모른다.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던 결기를, 국민들은 반대로 보기 시작했다. 시장과 싸우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오만이고 아집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 때야 젊어서 미숙했다지만, 50대가 돼서도 똑같다면 본인들의 실력을 의심해봐야 한다. ‘첫눈’이 아니라 낙엽 지기 전에 물러나야 할 사람들이 많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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