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 설립한 록펠러·카네기·밴더빌트처럼
國富를 쌓는 기업은 우리 사회 보석 같은 존재
기업인 존중하고 교육투자 나서도록 지원해야

김도연 < 포스텍 총장 >

올해 포브스가 발표한 전 세계 부호 명단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가 약 90조원의 재산으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런데 미국 250여 년 역사에서 각자 활동 당시의 국내총생산(GDP)을 고려해 다시 재산을 헤아리면 1위는 석유기업을 일군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1937), 2위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 3위는 해운과 철도기업을 운영했던 코닐리어스 밴더빌트(1794~1877)이고 빌 게이츠는 그 뒤를 잇는 4위로 꼽힌다. 앞의 세 사람이 얼마나 큰 기업을 운영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록펠러는 부호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다. 그가 1870년에 창업한 스탠더드오일은 5년 후에 이미 세계 최대의 정유업체가 됐고, 그 후 자동차 및 석유화학산업의 발달에 힘입어 무섭게 발전했다. 소위 문어발식 경영으로 끝없이 팽창하던 회사는 결국 반(反)독점법에 의해 무려 34개의 독립 법인으로 분할됐는데, 그는 “기업의 성장은 적자생존 과정”이라며 “기업은 사회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4년간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인 카네기는 도서관의 책을 읽으며 독학으로 기업을 일궜다. 50대에 이르러 당시 신문명의 견인차였던 철강회사를 설립해 세계적인 기업가로 우뚝 섰다. 카네기는 평생 쌓은 막대한 부를 사회에 모두 환원한 최초의 인물로, 오늘날의 빌 게이츠도 그의 삶을 본받고 있다. 카네기가 생전에 좋아했다는 구절 ‘자신보다 현명한 인재를 모아 함께 일하는 방법을 알았던 사람’은 그의 묘비명이다.

밴더빌트 역시 빈곤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학교를 떠나야 했지만 끝없는 노력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19세기 후반 급성장하고 있던 해운과 철도산업을 장악했다. 당시 “문학에는 셰익스피어가 있고 미술에는 미켈란젤로가 있지만 사업은 역시 밴더빌트”라는 이야기가 있었다니 그는 천부적인 기업가였던 모양이다.
여하튼 록펠러, 카네기 그리고 밴더빌트는 모두 미국의 기초를 쌓은 걸출한 기업인들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고 스러지는 것은 인간이나 기업 모두 마찬가지여서, 실제로 1973년 밴더빌트의 후손 120명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부자라고 할 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록펠러와 카네기 가문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앞서 언급한 세 사람의 기업인은 그들이 세운 대학과 더불어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밴더빌트는 80세를 맞이하면서 생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남부 테네시에 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기금을 기부했는데, 이는 남북전쟁으로 상처받은 미국을 치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후 밴더빌트대에서는 지난 150여 년간 15만 명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각자의 꿈을 키웠다.

록펠러는 1890년에 시카고대, 1901년에는 록펠러대를 설립했다. 시카고대는 노벨상 수상자만 100여 명 가까이 배출하면서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대학 중의 대학이다. 록펠러대는 의생명과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교수 100명 미만의 소규모 대학이지만, 그동안 배출한 36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더불어 인류 복지 향상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1900년 피츠버그에 설립된 카네기공과대는 카네기멜론대로 발전했는데, 카네기의 어록인 ‘내 심장은 뛰고 있다(My heart is in the work)’를 교훈으로 삼고 있다. 현재 100개가 넘는 국가에서 찾아온 1만5000명의 젊은이들이 카네기의 도전정신을 이어받으며 여러 분야에서 각자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알찬 대학이다.

국부(國富)를 쌓는 기업은 사회를 윤택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보석 같은 존재이기에, 우리는 기업인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기업인들이 적극적으로 교육 투자에 나서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인재 양성에 기여하는 기업인, 영원히 이름을 빛낼 기업인이 많을수록 대한민국은 더욱 크게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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