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파입스 미국 중동포럼 회장

1인당 국민소득 4위 나라가…
1914년 석유 발견… 막대한 수익
1950년까지 최고 부유국 반열에

경제 간섭하는 정부 때문에…
가격·외화 통제… 재산권 제한
수십년간 경기 침체에 빠져

GDP 최근 3년간 10%씩 감소
올해 물가상승률 6만5000%
역대 최악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독재자 차베스 복지정책의 말로
14년간 석유 팔아 복지에 투입
'이념의 폭정'이 경제파탄 일으켜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이념은 세상을 지배한다. 좋은 이념은 자유와 부를 창조하고 나쁜 이념은 억압과 빈곤을 낳는다. 당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느냐다.

정치인들은 특히 더 이념의 지배를 받는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했듯이 어떤 지적 영향력으로부터도 자유롭다고 믿는 실용주의자도 대개는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다. 권력을 잡은 미치광이가 허공에서 듣는 소리도 몇 년 전 어느 학자의 낙서에서 나온 것이다. 좋든 나쁘든 위험한 것은 기득권이 아니라 이념이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이런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나라는 1914년 석유를 발견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얻었고 비교적 자유로운 경제체제를 만들어냈다. 1950년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았다. 베네수엘라보다 잘사는 나라는 미국 스위스 뉴질랜드뿐이었다. 1980년대 말 베네수엘라는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를 뽐냈다. 2001년까지도 이 나라는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문제는 오래전 시작됐다. 1958년부터 정부가 경제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가격과 외환을 통제하고 세금을 올리고 재산권을 제한한 결과 경제가 수십 년간 침체에 빠졌다. 1997년 베네수엘라의 1인당 실질 국민소득은 1960년 대비 0.13% 감소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국가였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이 나라는 오늘날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폭정, 대량 난민, 범죄, 질병, 기아 등으로 하루하루의 삶이 고통스러워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은 2016년 16%, 지난해 14% 감소한 데 이어 올해도 15%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상승률은 2015년 112%였고 작년엔 2800%에 달했다. 스티브 한케 미국 존스홉킨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6만500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역사상 최악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나라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식량이 부족해 베네수엘라 국민의 평균 체중은 2016년 18파운드, 2017년 24파운드 감소했다.

무엇이 이런 위기를 불러왔는가. 외국의 침략도, 내전도, 자연재해도 없었다.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원이 나타난 것도 아니고, 농작물이 전염병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다. 나쁜 이념이다. 아주 쉽고 단순하다. 사회주의의 실패는 세계적으로 증명됐지만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자국민에게 사회주의를 시도해 보자고 했다. 차베스는 1999년 대통령이 되자마자 민간 기업의 재산을 몰수했고 반대파를 투옥했다. 그는 권좌에 앉은 14년 동안 석유를 팔아 벌어들인 1조달러로 유권자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사회복지 정책을 폈다.

또 국영 석유회사의 유능한 전문가들을 꼭두각시와 아첨꾼들로 교체했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도 갈랐다. 베네수엘라 언론에 따르면 차베스의 딸 마리아는 이 위대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42억달러로 추산되는 재산을 축적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사회주의의 문제점은 당신이 쓰는 다른 사람의 돈이 결국 바닥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베스는 암으로 일찍 죽은 덕분에 (돈이 바닥나는) 문제를 겪지는 않았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그는 쿠바에서 암 수술을 받다가 의료사고로 ‘암살됐다’고 한다.

차베스는 유가가 급락하기 약 1년 전인 2013년 3월 죽었다. 그보다 더 잔인하고 무능한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재앙을 물려받았다. 석유에서 얻는 수입이 줄어들자 차베스의 파탄난 이념이 남긴 실질적인 비용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사회주의를 존속시키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는 전체주의 체제가 돼 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나쁜 이념은 항상 존재했지만, 그것은 자유주의 사상이 출현한 17세기 후반 이후 영향력이 더 커졌다. 그 전까지는 전통을 중시하고 전통과 새로운 환경을 조화시키려는 보수주의 이념이 우세했다. 왕이나 종교 지도자의 비전은 전통이 허용하는 선에서 실현될 수 있었다. 개인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유주의 이념이 나타나면서 전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급진적인 이론은 특히 프랑스혁명 기간에 빠르게 확산됐다. 음모론처럼 경험과 상식에서 벗어난 이념이 넘쳐났다. 이런 급진 이론은 19세기에 발전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엔 파시즘, 나치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끔찍한 이념으로 귀결됐다. 역사학자 폴 존슨이 지적했듯이 모든 폭정 중 최악의 폭정은 무자비한 이념의 폭정이다.

나쁜 이념에 맞설 수 있는 해독제는 전통과 인간의 본성을 존중하는 보수적이고 온건하며 검증된 이념뿐이다. 격렬한 혁명이나 거창하기만 한 실험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선이어야 한다. 미국 민주당원들이 베네수엘라가 주는 교훈을 무시하고 사회주의에 빠져든다면, 이념 전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원제=Venezuela’s Tyranny of Bad Ideas

정리=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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