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탐구 - JYP엔터, 시가총액 1조 돌파 비결

2008년 금융위기로 파산 위기
"이대론 안된다" 경영시스템 변화

4년간의 혁신 실험 '성공'
타이틀곡·안무·뮤직비디오 등
박진영 혼자 챙기던 체제 바꿔
'15인 음악선정위원회' 가동
본인 타이틀곡도 위원회서 선정
소속 가수, 음원차트 1위 늘어

아티스트 중심으로 조직개편
트와이스 전담부서…빠른 의사결정
해외서 직접 아이돌 육성 '현지화'
음악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가 연 매출 1000억원 돌파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파산 위기까지 몰렸던 회사가 4년여에 걸친 혁신 실험을 통해 영업이익 200억원짜리 ‘알짜 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22일엔 시가총액 1조108억원(종가 기준)으로 ‘시총 1조클럽’에도 합류했다. 2001년 8월 코스닥시장 입성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걸그룹 트와이스와 보이그룹 갓세븐 등의 실적이 고공행진하는 데다 중국에서 데뷔할 보이그룹의 실적 전망도 밝기 때문이다. 정욱 JYP 대표는 28일 “박진영 JYP 창업자 겸 창의성최고책임자(CCO)가 경영시스템을 확 바꾼 게 주효했다”며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결정이 오늘의 급성장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박진영, 권한을 15분의 1로 줄여

원조 걸그룹 원더걸스를 미국에 데뷔시키겠다는 박 CCO의 ‘꿈’은 2008년 금융위기로 물거품이 됐다. 미국 현지 파트너 음악회사들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원더걸스 데뷔 프로젝트 계약을 파기한 것이다. 동시에 JYP의 미국 시장 대규모 투자도 부실 덩어리가 됐다. JYP가 뉴욕에 열었던 대형 레스토랑의 적자 규모도 확대됐다. 그나마 버팀목이 된 2PM과 배우 겸 가수 수지가 벌어들인 수익으로는 빚 갚기조차 어려웠다. 2009년 매출 101억원에 영업손실 59억원의 실적은 2013년까지 5년 연속 사실상 적자(2010년 영업이익 1억원 포함)로 이어졌다.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 보였다.

결국 박 CCO는 2014년 초 경영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자신이 음반 타이틀곡을 고르고 곡들의 안무와 영상, 뮤직비디오까지 직접 챙기던 데서 한발 물러나기로 한 것. 음반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타이틀곡을 결정할 때 각 부서에서 1명씩 뽑아 총 15명이 참여하는 ‘음악선정위원회’를 열고 스스로 15인 중 한 명으로 들어갔다. 이전 자신의 권한을 15분의 1로 축소시켰다. 아티스트, 제작부문, 마케팅 등 여러 부문에서 온 음악선정위원들은 격론을 거쳐 최고 점수를 얻은 1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했다. 박 CCO 자신의 음반도 이 시스템을 거쳤다. 자신의 음반 타이틀곡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SM의 이수만 회장이나 YG 양현석 대표프로듀서는 프로듀서 업무에만 집중하지만 지금도 작사, 작곡을 직접하는 박 CCO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이후 연간 30여 개의 타이틀곡들이 모두 차트 1위를 석권했다. 1994년 창업 후 20년간 지속해온 이른바 ‘원톱경영’에서 탈피하면서 회사가 회생의 길을 찾은 셈이다.

◆가수 중심 조직으로 회사 재편
박 CCO는 작곡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여기에 우수 작곡가를 대거 영입했다. 정기적으로 노래캠프와 오디션을 열어 유망 작곡가들을 선발했다. JYP는 현재 전속 작곡가 25명과 즉각 투입할 수 있는 외부 작곡가 35명 등 총 60명의 작곡가 그룹을 거느리고 있다. 트와이스가 지금까지 발표한 8곡의 타이틀곡 중 5곡을 이 같은 작곡가 그룹이 만들었다. 박 CCO는 “내가 없어도 회사가 운영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춘 것”이라고 말했다.

JYP는 지난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해 내부 조직도 바꿨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기존 조직으로는 콘텐츠 제작 과정이 느리다고 판단해서다. 기존 마케팅, PR, 매니지먼트, A&R(아티스트 발굴 및 육성) 등 기능별로 분리한 부서를 아티스트 중심으로 통합했다. 소속 가수 트와이스를 전담하는 부서가 이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합쳐놨다. 박 CCO는 “트와이스에 조직개편 실험을 처음 적용한 결과 업무 속도가 빨라졌고 효율이 높아졌다”며 “스태프와 아티스트 간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해졌다”고 설명했다. 트와이스의 성공 모델을 전 소속 가수로 확대했다. 갓세븐, 데이6 등 아이돌그룹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했다.

◆‘한류 3.0’으로 진화 가속

JYP는 해외에서 인재(아티스트)를 직접 육성하는 ‘한류 3.0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1세대 K팝이 한국 콘텐츠 수출, 2세대 K팝이 해외 인재를 발굴해 한국에 들여오는 것이었다면 3세대는 해외에서 현지화하는 전략이다. JYP는 다음달 중국 최대 음악 스트리밍 기업인 텐센트뮤직엔터테인먼트(TME)와 손잡고 6인조 중국 아이돌그룹 ‘보이스토리’를 현지에서 데뷔시킨다. 보이스토리는 평균 연령이 13세 그룹이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최근 중국 QQ뮤직 비디오 차트 1위를 차지했다. JYP는 내년 말이나 2020년 초 전원이 일본인으로 구성된 걸그룹도 선보일 계획이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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