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덱스컵 플레이오프 1차전' 노던트러스트 우승

2위 피나우 4타차로 따돌려
2016년 프로데뷔 후 통산 3승
상금 17억 더해 100억원 돌파

길이 똑같은 '쌍둥이 아이언'
말안장 퍼터 등 '파격 실험'
'마이웨이' 고집한 필드위 과학자

브라이슨 디섐보가 27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패러머스 리지우드CC에서 끝난 PGA투어 플레이오프 1차전 노던트러스트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전공인 물리학을 골프에 적용해 ‘필드의 과학자’로도 불리는 그는 이번 대회에서 PGA투어 통산 3승째를 신고했다. /AP연합뉴스

샤프트 길이를 6번 아이언에 똑같이 맞춘 ‘열쌍둥이 아이언’, 옆으로 퍼팅하는 말안장 퍼터, 제도용 컴퍼스….

‘필드의 과학자’ 브라이슨 디섐보(25·미국)가 2016년 프로 데뷔 이후 골프계에 소용돌이를 몰고 온 물건들이다. 쌍둥이 아이언은 후원사인 코브라가 본인 동의를 얻어 상품화한 뒤 꽤 많이 팔려나갔다. 하지만 그가 직접 개발한 말안장 퍼터와 컴퍼스는 미국골프협회(USGA)가 ‘비규격 장비’로 취급하면서 디섐보의 경기용 장비 목록에서 언제부터인가 빠졌다. 사람들은 물리학도 출신인 그가 개성 강한 스윙 이론과 장비를 들고나와 기존 주류 골프계와 자주 맞선다는 이유로 ‘미치광이 과학자(mad scientist)’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이제 그들은 속속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고 있는 디섐보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주류 골프에서 통한 비주류 골퍼

프로 데뷔 3년차 디섐보가 통산 3승을 올렸다. 27일(한국시간)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1차전 노던트러스트(총상금 900만달러)에서다. 그는 최종 라운드에서 2언더파 69타를 쳐 4라운드 합계 18언더파 266타로 우승했다. 토니 피나우(미국)가 디섐보에게 4타 뒤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대회는 세계 랭킹과 비슷한 페덱스 랭킹 125위까지 출전할 수 있는 시즌 결산 대회다.

대학과 아마 무대를 평정한 뒤 2016년 프로로 전향한 디섐보는 지난해 7월 존디어클래식에서 생애 첫 우승을 신고하며 주류 프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 올해 6월 메모리얼토너먼트를 제패하며 다시 한번 존재감을 증명한 뒤 2개월 만에 통산 3승 고지를 밟았다. 이번 우승으로 157만5000달러(약 17억5000만원)를 챙긴 디섐보는 9위였던 페덱스 랭킹을 1위로 대폭 끌어올렸다. 4차 시리즈를 치러 최종 1위가 가져가는 페덱스컵 보너스 상금 1000만달러에 가장 먼저 다가선 것이다. 디섐보는 “샷 일관성을 지키는 데 끝까지 집중했다. 앞으로 더 큰일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섐보와 종종 연습 라운드를 한 타이거 우즈(미국)는 1타를 줄이는 데 그쳐 공동 40위(4언더파)에 머물렀다. 안병훈(27)이 이븐파 공동 40위, 김민휘(26)가 공동 48위(3언더파), 김시우(23)가 공동 76위(4오버파)로 대회를 마감해 100위까지 허용하는 플레이오프 2차전 출전권을 확보했다. 강성훈(31)은 3오버파 75위(페덱스 랭킹 111위)로 추락하는 바람에 2차전 출전이 무산됐다.
어린 시절부터 과학적 골프에 천착

디섐보는 어렸을 때 쓰기와 읽기를 잘 못 했다. 그는 “고2 때 작문에서 B학점을 받고는 좌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학과 물리학 등 과학 분야는 스스로 “타고난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좋아했다. 골프에 입문한 뒤 그런 기질이 도드라졌다. 길이가 37.5인치(0.953m)로 똑같고, 무게(280g)와 라이각(72도)까지 다 똑같고 로프트 각도만 다른 쌍둥이 아이언을 개발한 것은 17세 때였다. 그의 스윙 코치였던 마이크 샤이는 “코치들이 디섐보의 끝없는 호기심과 집요한 질문에 힘들어했다”며 “증명되지 않는 스윙 이론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주류 골프계에서도 야디지북 코스맵에 컴퍼스를 들이대고, 특이한 형태의 퍼터와 아이언을 쓰는 그를 이단아 취급하며 밀어내려 애썼다. 시장에서 먹혀온 기존 스윙이론과 장비제조법 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하지만 디섐보는 지금까지 69개 대회에 출전해 3승을 올렸고, 상금 848만2684달러(약 100억원)를 벌어들이며 주류 골프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디섐보는 “골프를 쉽고 재미있으며 일관되게 칠 수 있는 법을 탐구하는 것일 뿐이고 내 스윙은 여러 해답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스스로를 낮췄다.

마음 씀씀이도 괴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이달 초 그는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을 앞두고 열린 장타대회에서 1위(331야드)에 올라 상금 전액(2만5000달러)을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동료 골퍼 제라드 라일(호주)의 가족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디섐보는 1993년생 ‘황금세대’를 두텁게 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을 전망이다. 조던 스피스(통산 11승), 저스틴 토머스(통산 9승), 잰더 슈펠레(통산 2승·이상 미국) 등 ‘차세대 황제’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신진 스타들과 같은 나이다. 남은 플레이오프 3개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 유럽과 미국의 대륙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 미국대표팀 승선도 가능하다. 우즈는 대회가 끝난 뒤 디섐보에 대해 “재능 있고 똑똑한 선수”라며 “그런데도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치켜세웠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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