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의혹 징용소송 원고 이춘식씨,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 촉구

"대법원이 썩어서 잠자고 있었던 게지. 잠 안 자고 열심히 일해야지. 나쁜 사람들이야. 새 정부가 일을 잘하도록 부탁하고 싶어."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 노역을 했던 이춘식(98) 씨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전범 기업 대상 소송이 '재판거래'에 쓰였다는 의혹이 불거진 데 대해 지난 정부에 대한 강한 실망을 드러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이씨는 22일 오전 시민단체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개최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소송 전원합의체 심리 재개에 대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했다.

이씨는 "대법원이 썩어서 잠자고 있었다.

썩은 법관이었다.

새 정부는 그러면 안 된다.

깨끗하게 이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씨는 1941∼1944년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신일철주금에 강제징용돼 노역에 시달리고는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는 다른 노동자 3명과 1997년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내면서 1인당 1억원의 위자료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패소했고, 이후 2005년 우리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다.

1·2심은 "신일본제철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는데, 2012년 5월 대법원은 "일본 법원의 판결 이유는 일제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서울고법은 사건을 다시 심리해 2013년 신일본제철이 1억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5년 넘도록 결론을 미뤄왔다.

대법원은 '재판거래' 및 '사법농단' 의혹이 터져 나온 후인 지난달 27일 해당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이르면 올 하반기 내에 확정판결이 나올 전망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해당 소송 원고 4명 중 2명인 여운택씨와 신천수씨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춘식씨도 이날 이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주최 측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사법부가 추악한 '재판거래'를 통해 판결을 지연시키는 동안, 대법원 확정판결을 애타게 기다리던 원고 2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서 "박근혜 지시를 받은 김기춘은 2013년 차한성 전 대법관·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등과 '4자 회동'을 통해 결론 연기 및 파기 방안을 논의했고, 양승태는 윤병세에게 법관 해외공관 파견을 요청했다"며 "'재판거래'는 국헌 문란인 동시에 외교 주권 포기"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대법원이 사건 심리 재개에 앞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것,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임명된 대법관들은 사퇴할 것, 검찰은 '재판거래' 관계자를 철저히 수사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춘식 씨는 다른 원고들의 부고를 듣고 "나라도 대법원에 가봐야겠다"며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대법원 건물을 방문했다.

그는 대법원 종합민원실에 들른 뒤 건물을 바라보면서 "(재판) 지연시킨 사람들 옷 벗어야 해, 마누라 돌아간 지 20년이야. 서러워 죽겠어. 나도 어서 가야 돼."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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