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長 무너져 '가족 해체' 우려

20대엔 취업실패→30대엔 고용불안→40대엔 대량실직

40대 실직자들의 하소연

"GM 군산공장서 희망퇴직…아내 식당 알바로 생계 유지"
"올초 물류회사서 해직…재취업하려 해도 일자리 없어"
"막노동 자리도 찾기 어려워 부모님 따라 귀농 준비해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회사에서 40대가 가장 많이 희망퇴직을 했어요. 외환위기 때도 버텼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식 세 명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이모씨·46·한국GM 군산공장 퇴직)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허리’인 40대가 휘청이고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제조업 구조조정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촉발된 ‘고용쇼크’의 직격탄을 맞고 있어서다.

‘40대의 눈물’은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7일 발표한 ‘7월 고용동향’을 보면 40대(만 40~49세)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14만7000명 줄어 전 연령대 중 감소세가 가장 가팔랐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의 최대 감소폭이다.

40대는 ‘IMF 세대’로 불린다. 대학 졸업 때 외환위기가 터져 상당수가 취업에 실패했다. 일부는 때를 놓쳐 사회 낙오자가 되기도 했다. 겨우 직장을 잡은 사람도 30대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나 다시 실직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20년간 두 번의 위기를 이겨낸 40대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시기에 또 한 번 높은 파도를 만난 셈이다. 일자리를 잃고도 최저임금 부담에 과거처럼 자영업으로 재기하기도 어려운 것이 40대의 현주소다. 전문가들은 40대 ‘고용대란’이 자칫 가족 해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고용노동부 산하 재취업 지원기관인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등록한 지역별 40대 실직자들로부터 각자의 사연을 들어봤다.

한국GM 군산공장에서 희망퇴직한 이모씨(46)는 “정리해고 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했다. 물류회사를 다니던 유모씨(40)는 “결혼도 못 하고 일만 했는데 실직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선박도장 협력업체에서 나온 김모씨(45)는 재취업을 위해 미용기술을 새로 배웠지만, 정작 동네 미용실들은 기존 직원도 내보냈다. 거제 조선소에서 용접 일을 하던 최모씨(42)는 귀농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역별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만난 40대 실직자들의 자화상이다.

40대는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해 ‘경제의 허리’로 불린다.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이기도 하다. 이런 40대가 최근 ‘고용쇼크’의 한가운데 있다. 지난 7월만 하더라도 40대 취업자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만 명 이상 줄었다.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최악이다. 20대 때 외환위기를 맞아 취업 실패를 겪더니 30대 들어선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나 겨우 잡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40대엔 고용대란으로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불행한 세대’가 됐다. 40대들 사이에선 ‘버림받은 세대’란 자조 섞인 푸념도 나온다.

“정리해고 당한 비정규직에 미안”

GM 군산공장을 그만둔 이씨는 지난 5월 희망퇴직을 했다. 그는 대우자동차 시절인 1997년 초 입사해 같은 해 시작된 외환위기에도 살아남아 줄곧 조립파트에서 근무해왔다. 이씨는 “외환위기 당시 급여가 제때 못 나올 정도로 회사가 어렵긴 했지만 요즘 같은 위기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씨는 중소기업 재취업을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내가 생계에 보태기 위해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며 “그나마 식당에서는 최저임금 부담으로 하루에 피크타임 3~4시간만 일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래도 자신은 나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는 “비정규직 직원들은 희망퇴직금도 못 받고 정리해고 당했다”며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요즘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끝을 흐렸다.
“40대 되니 재취업도 힘들어”

유씨는 올초 일하던 서울 물류회사에서 근로계약을 해지당한 뒤 아직도 여기저기에 지원서를 넣고 있다. 그가 다니던 회사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 침체 영향을 견디지 못하고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지난 1월부터 받던 실업급여는 4월에 지급이 끝났다.

유씨는 20년 전인 1998년 대학 입학 후 외환위기로 인해 아버지의 실직을 겪었다.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 1년만 대학을 다니다 휴학한 뒤 곧바로 입대했다. 제대 후 대학을 중퇴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생계를 유지하기에 급급해 결혼은 꿈꾸지도 못했다. 유씨는 “얼마 전 고용 통계와 관련해 ‘40대가 어렵다’는 기사들을 보니 꼭 내 이야기 같았다”며 “나이가 이미 40세라 재취업도 힘들고, 그동안 고생한 대가가 겨우 이런 건가 싶다”고 말했다.

“미용기술 배웠어도 갈 곳이…”

전업 주부이던 김씨가 조선업 도장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10년 전 경남 통영으로 터전을 옮긴 직후였다. 당시 중소 조선업체들이 몰린 통영 지역엔 일손이 부족했다. 여자들도 노력만 하면 일할 곳이 넘쳤다.

김씨는 외환위기 당시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휘청이는 것을 봤다. 겨우 해고를 면한 남편을 보면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일을 배워 노후를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분위기가 바뀐 건 3년 전부터다. 중소 조선업체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으면서 김씨의 일거리도 눈에 띄게 줄었고, 결국 작년 9월 일자리를 잃었다.

김씨는 국비 지원을 받아 미용 기술을 배웠다. 막상 교육을 마치고 취업하려고 보니 도장업체에서 받던 임금의 절반 수준으로도 미용실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지역 경기 침체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미용실들은 오히려 기존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었다. 김씨는 “다른 동료들처럼 일자리를 찾아 통영을 떠나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부모님 따라 귀농 고민”

거제 지역 조선소에서 용접 일을 하던 최씨는 지난 1월 일자리를 잃었다. 재취업에 번번이 실패한 가운데 지난 20일 실업급여도 끝났다. 최씨는 “일부 동료들은 경기가 나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 건설 현장 막노동 등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씨의 아내는 생계에 보태고자 올초 인근 바닷가에서 굴을 캐기 시작했다. 그나마 올여름 폭염으로 일을 못 하고 있다. 최씨는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계신 경북 청도로 귀농을 할까 고민 중”이라며 “살면서 이렇게 힘들어진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임도원/김일규/심은지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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