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스마트폰으로 영상채팅 유도
알몸 녹화 후 "퍼뜨리겠다"
전체 피해자 중 40%가 미성년자
성적 학대 받다 자살하기도

해외보다 국내 피해가 더 심각
사회적 체면 중시하는 동양사회
'가족에 유포' 협박…두려워해
수치심에 수사 꺼려 신고율도 낮아
전문가 "학교차원 보안교육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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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0대 남학생 A군은 지난 16일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익명의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랜덤채팅’방에 들어갔다. 자신을 여성이라고 밝힌 상대방은 “야한 얘기를 더 하자”며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줬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영상통화로 이어졌다. 실제 여성이 화면에 등장했지만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나게 해주는 ‘음성지원 앱’이라며 파일 하나를 보내왔다. 설치가 끝나자 음란 행위를 해보라고 시켰다. 영상통화를 마친 뒤 갑자기 동영상 파일이 날아왔다. 방금 전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상대방은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설치된 해킹 프로그램으로 입수한) 가족과 지인 번호로 영상을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작년 ‘몸캠 피싱’ 범죄 1234건…2년 새 12배↑

스마트폰을 해킹해 음란 영상을 녹화한 뒤 돈을 요구하는 ‘몸캠 피싱’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몸캠 피싱 범죄는 2015년 102건에서 작년 1234건으로 12배 수직 상승했다.

피해자들이 수치심에 경찰 신고를 꺼리기 때문에 실제 피해 규모는 경찰 통계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한 20대 남성이 온라인에서 여성인 척하며 다른 남성들에게 알몸 사진을 찍어 보내도록 유도해 돈을 뜯어내다 검거된 사건의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는 250여 명이 넘었지만 실제 신고한 피해자는 두 명에 그쳤다.

몸캠 피싱 피해자를 돕고 있는 민간단체 한국사이버보안협회가 자체 집계한 지난해 몸캠 피싱 발생 건수는 1만여 건으로 경찰청 통계의 8배에 달했다. 올해 관련 피해 상담건수도 월평균 1000여 건으로 전년보다 20%가량 증가했다.

10대 청소년은 스마트폰 이용이 활발한 데다 성적 호기심이 크기 때문에 이 같은 유형의 범죄에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사이버보안협회는 전체 피해자 가운데 미성년자 비중이 4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협회 관계자는 “미성년 피해자의 대다수가 10대 남성이지만 더러 초등학생과 여학생 피해자도 있다”고 전했다. 2016년 12월 카카오톡으로 여덟 살과 아홉 살 아동에게 각각 접근해 나체 사진을 찍은 뒤 이를 유포하겠다며 협박한 가해자가 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8세 아동까지 타깃…돈 없으면 ‘몸캠 노예’로

인터넷에도 “몸캠 피싱에 당했다”며 도움을 호소하는 청소년이 넘쳐난다. 네이버 ‘몸캠 피싱 피해자 모임’ 카페에는 하루에만 4~5건의 피해 사례가 올라온다. 댓글에는 “돈을 보내도 영상을 유포하고, 보내지 않아도 유포하더라”며 ‘자포자기식 반응’도 적지 않다.
몸캠 피싱 가해자들은 주로 여성인 척 가장하거나 실제 여성을 대동해 피해자에게 “영상통화를 하자”며 1 대 1 채팅방으로 유인한다. 이어 스마트폰 해킹 툴을 소리지원 앱 등으로 위장해 피해자 스마트폰에 설치하도록 꼬드긴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 지인들의 연락처가 해킹 툴을 타고 자동으로 넘어간다.

피해자에게 자위행위나 성기를 보여달라고 요구해 영상·사진 등을 확보하면 곧바로 협박이 시작된다. 경찰 관계자는 “이 밖에 음란방송 사이트를 알려주겠다며 악성코드가 깔린 웹사이트로 유도하거나 무작위로 영상통화를 걸어 수신자 얼굴을 캡처해 포르노 사진에 합성하는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력이 약한 청소년 피해자는 범죄자의 강요에 못 이겨 ‘몸캠 노예’로 동원되기도 한다. 매일 6시간 이상 인터넷 게시판 등에 몸캠 피싱 채팅방을 홍보하거나 채팅방에서 여성인 척 위장해 또 다른 피해자를 물어오도록 하는 식이다.

이 같은 몸캠 노예로 전락하는 피해자가 전체 청소년 피해자의 75%에 달한다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 일부 가해자는 몸캠 피싱에 걸려든 청소년 피해자를 상대로 성폭행 등 성범죄까지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8월 몸캠 피싱을 당한 15세 여학생이 가해자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다가 자살하기도 했다.

신고 꺼려…“학교 차원의 예방교육 절실”

서양에 비해 성에 보수적이고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가 오히려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걸 한국사이버보안협회 이사장은 “미국 호주 등 사례를 보면 가해자가 영상과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할 때 피해자가 오히려 ‘마음대로 하라’며 개의치 않는 경우도 많다”며 “반면 한국에서는 가족과 지인에게 영상이 전송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기 때문에 몸캠 피싱 범죄 조직의 집중 타깃이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성년자 몸캠 피싱 범죄를 예방하려면 학교 차원에서 철저한 사전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청 사이버성폭력수사팀 관계자는 “10대 청소년은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만큼 학교 차원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과 함께 범죄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실제 사례를 활용한 예방 교육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도 “청소년이 피해를 입었을 때 스스로 해결하려다 극한 상황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를 입은 즉시 적절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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