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고용·세금 분배 통해 확대되는 '관리경제'
자유·경쟁 억압된 경제가 번영한 사례 없어
지금 우리 '노예로의 길' 기웃거리진 않는지

정갑영 < FROM100 대표, 前 연세대 총장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망각도 자유의 한 형태”라고 했다. 너무 자유로워서일까?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채 30년도 안 됐는데, 다시 사회주의 경제의 허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수십억 인류를 궁핍으로 전락시킨 사회주의 체제가 당시에는 왜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 국가가 경제를 직접 관리해야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 아니겠는가. 분배정책에 몰입했던 남미와 그리스의 실험도 마찬가지다. 물론 경쟁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반대로 시장의 자율을 억제하면 경제가 침체될 수 있다. 그래도 그 큰 재앙의 역사를 어떻게 망각할 수 있겠는가. 자유로운 경쟁을 확대하고 정부 개입은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이 강해지면 경제도 국가가 관리해야 더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는 유혹에 직면한다. 경제가 정치에 예속되면 정권이 추구하는 이념적 가치도 정부 주도로 실현해야 한다는 국가 만능의 자만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1920년대 사회주의 학자들은 노동 투입량을 기초로 국가가 모든 재화의 가격을 계산할 수 있고, 그 가격이 시장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형평과 정의 등 사회적 가치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것이 바로 세기적인 ‘계산논쟁(calculation debate)’으로, 시장사회주의가 출범한 단초가 됐다.

과연 그럴까? 만약 정책결정자가 신의 능력을 갖고 있다면, 과부족(過不足)이 없는 환상적인 균형이 달성될지 모른다. 국가가 모든 걸 효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면 누가 경제를 걱정하겠는가. 그럼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조차 국가관리 경제가 직업과 소득을 보장하고 평등사회를 구현하며 의회 승인을 거쳐 민주적 사회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 풍미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역사적 고전 《노예로의 길(The Road to Serfdom)》이 출판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는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는 관리경제는 소수 정책결정자에 의해 독재화하고, 국민은 자유와 번영은커녕 모든 것을 정부에 매달려야 하는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 정부는 이념적인 가치 추구를 위해 작은 혜택을 담보로 경제적 자유를 점진적으로 박탈하고, 국민은 결국 직업과 소득, 연금 등 모든 것을 정부의 ‘공짜 점심’에만 의존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불행히도(?) 하이에크의 경고는 그대로 적중했다. 국가의 ‘계산능력’을 믿고 시도했던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는 수많은 사람을 노예화하지 않았는가. 오죽하면 소련의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에게는 노벨 생물학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유머가 회자됐겠는가. 봄철마다 그 넓은 소련 땅에 국민을 동원해 밀 씨앗을 뿌리게 하고, 가을에는 식량이 부족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확(수입)하니 생물학상을 타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중국도 결국은 덩샤오핑 주석이 하이에크를 초청해 시장의 자유와 경쟁을 수용한 1978년 경제개혁 이후 인민들을 배불리게 하지 않았는가.

어느 시대나 경제가 정치에 예속되면 경제마저 특정한 이념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정의나 평등과 같은 이상적 가치를 내세우지만, 실제로 모든 국민이 동의하는 현실적 기준을 설정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국론은 분열되기 마련이고, 국가 권력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각종 규제로 민간의 자유와 창의적 경쟁을 제한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소외되고,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압도하게 된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직접 고용과 세금 배분을 통한 소득 증대, 국민연금 운용 등을 통해 국가관리의 영역을 점차 확대하려 한다.

경제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특정한 이념에 얽매인 경제정책은 반드시 반대급부가 따른다. 경제가 정치화하고 자율과 경쟁을 제한할수록 분배의 원천이 되는 생산과 투자 생태계는 크게 위축된다. 자유와 경쟁이 억압된 경제가 번영을 누린 사례는 어디에도 없다. 한여름 폭염을 피하며 우리 모두 겸손한 자세로 《노예로의 길》을 일독하자. 행여 우리도 지금 그 길의 초입을 기웃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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