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 26주년 회고전 잇따라

금산갤러리 '역사의 빛' 시리즈展
추계예대, 판화 대중화 업적 조명

서울 회현동 금산갤러리에 전시된 강국진 화백의 작품 ‘역사의 빛’ 시리즈.

‘한국미술의 프런티어’ 강국진 화백(1939~1992)은 한국 최초 퍼포먼스라 불리는 행위예술가로 통한다. 국내 처음으로 판화공방을 운영했고, 집단 창작스튜디오 개념을 도입했다. 국내 화단에서 처음 오브제(일상생활용품이나 자연물)를 활용한 테크노아트의 효시 ‘꾸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름 앞에는 항상 ‘최초’라는 말이 자주 따라붙는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강 화백은 1967년 주류 미술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도전을 내세운 아방가르드미술단체 ‘신전’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해 12월에는 젊은 작가들의 기념비적 전시 ‘청년작가연립전’에 참가해 ‘색물을 뿜는 비닐 주머니’,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을 시연하며 퍼포먼스를 펼쳤다. 당시 행위미술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1968년 5월30일에는 정찬승, 정강자 등과 함께 서울 명동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국내 첫 누드 퍼포먼스(‘투명풍선과 누드’)를 선보여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낳았다. 1970년대 한국 화단이 단색조 회화라는 덫에 빠져 허덕일 때도 그는 우리 현실에 맞는 회화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 부단한 실험에 도전했다.

올해가 한국미술의 혁신을 이끈 강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 26주기가 되는 해다. 국내외 화단에서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재조명하는 회고전이 열리고, 미술시장에서도 재평가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서울 회현동 금산갤러리는 ‘오마주! 강국진-역사의 빛’을 주제로 회고전을 열고 있다. 평생을 끊임없이 도전하고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시도했던 강 화백의 회화세계를 재조명한다는 취지에서다. 오는 1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1980~1990년대 주로 제작한 회화 작품 20여 점이 걸렸다. 작가가 작업하며 쌓아올린 삶과 예술정신을 파노라마처럼 엿볼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 작업한 그의 ‘역사의 빛’ 시리즈는 한국적 소재를 활용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야기들을 화면에 다채롭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캔버스를 좌우로 분리해 왼쪽에는 주로 기마상, 불상, 바위, 물고기 등 한국 전통적인 소재를 자유분방한 선과 원, 사각형, 마름모 형태로 압축해 한국 역사를 은유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소재를 통해 과거와 현재, 밝음과 어둠, 단순성과 복잡성을 한 화면에 아울렀다는 점에서 ‘하모니즘 미학’의 전형을 보여준다.

반구상 형태의 ‘역사의 빛’ 시리즈가 이야기 구조에 역점을 뒀다면 1970~1980년대 시도한 선조(線條) 작업은 회화의 속성을 깊숙이 파고든 게 특징이다. 선의 중첩을 통한 무한한 선 긋는 행위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려 회화의 기본원칙을 일깨워 준다.

판화 장르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강 화백의 판화전도 마련된다. 추계예술대는 다음달 5일부터 한 달간 ‘강국진 판화 특별전’을 열고, 화단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판화를 빠르게 주류 미술로 끌어들인 그의 열정을 조명한다. 추계예대는 다음달 20일 ‘강국진 학술 세미나’를 열 예정이다.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는 “강 화백은 평생 세속적 가치와는 담을 쌓고 오로지 미술만 즐기며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며 “서구 미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현실에 맞는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데 끊임없이 자극하는 역할을 자처한 미술가”라고 평가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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