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 시니어 투어 10승 고지 밟은 정일미 프로

호반챔피언스 클래식 8차전
37도 폭염 뚫고 9언더파 우승

프로이자 '호랑이 교수님'
"대회 출전 자체가 배움터"

“더위가 되레 절 가르치네요. 하하.”

폭염 속에서도 골프 대회는 지속된다. 만 42세 이상 여자 프로들이 출전하는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도 마찬가지. 투어 프로와 교수직을 겸하는 정일미 프로(46·호서대 골프스포츠산업부 교수·사진)는 ‘불가마 대회를 완주할 수 있을까?’란 주변의 우려를 보기 좋게 뚫어냈다. 지난 7일 전북 군산C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챔피언스투어 호반챔피언스 클래식 8차전을 9언더파로 제패한 것이다. 2014년 시니어투어에 데뷔한 지 4년 만에 통산 10승 고지를 밟았다. 20~30대 프로 시절 쌓은 정규(1부) 투어 8승까지 합치면 벌써 개인 통산 18승. 뙤약볕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은 대회 코스다 보니 생애 첫 두 자리 승수를 하마터면 열사병 증세로 헌납할 뻔했다.

“너무 힘들어서 15번홀까지 참다가 그만 백을 내리고 싶었어요. 더위도 더위였지만 두통에다 복통까지 갈수록 심해졌거든요.”

기권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하자 투어 프로 선발전 시험을 위해 군산에 함께 내려온 제자들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맨날 정신력을 강조하던 제가 9부 능선까지 와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고 말했다. 정 프로는 모든 생각을 없애는 ‘집중 모드’를 가동했다. 그냥 웃는 것이었다. 그는 정규 투어를 뛰던 20~30대 때 늘 미소를 지어 ‘스마일 퀸’이란 별명을 얻었다.

“가슴 속 울화와 짜증을 풀어주고 잡념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게 웃음의 힘이에요. 그 폭염 속에서 혼자 실실 웃어 미쳤나보다 싶었겠지만, 나머지 세 홀을 집중해 끝낼 수 있었으니 저에겐 약이 됐죠.”
2위 한소영 프로가 이날 ‘데일리 베스트(5언더파)’를 치며 1타 차까지 쫓아왔지만 그는 17번홀(파3)에서 9m짜리 긴 버디 퍼트를 홀에 꽂아 넣어 2타 차 우승을 확정했다. 그는 “제자들과 클럽하우스에서 ‘치맥’으로 우승파티를 하면서 견뎌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더위 속에서도 몰입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라고 했다.

강의와 투어 병행이 쉽지 않지만 그는 “대회 출전 자체가 저에겐 힐링이자, 배움터가 된다”며 “아직도 라운드를 뛸 생각을 하면 새벽까지 가슴이 뛴다”고 털어놨다.

제자들의 존재도 힘이다. 부끄럽지 않은 스승으로 남아야 한다는 동기를 늘 심어줘서다. 학교에선 워낙 엄하게 가르쳐 ‘호랑이 교수님’으로 통하는 그이지만, 우승 트로피를 추가하고 상금왕 타이틀을 따낼 때마다 장학금으로 100만원씩을 꼬박꼬박 학교에 내놓을 정도로 제자 사랑이 남다르다. 올 시즌 4년 연속 상금왕에 성공하면 또 장학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렇게 좋은 골프 오래 해야죠. 쉰다섯의 나이에도 얼마 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우승한 로라 데이비스처럼 오랫동안 필드를 지키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선수로 남고 싶어요.”

천안=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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