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박화영’ 포스터/사진제공=명필름랩

영화 ‘박화영’ 포스터/사진제공=명필름랩

‘박화영’은 청소년을 다루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은 그들이 겪는 현실적 위협, 위기와 별개로 안전과 안녕의 카테고리 안에서 보호 당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아이러니를 영화 내부의 아이러니가 이어받는다. 주인공 박화영의 모친은 둘의 관계, 즉 가족관계를 해체하며 허름한 집 하나를 구해준다. 모친의 입장에서 집과 약간의 생활비는 가정과 대체되는 것이다. 이 집은 영화의 주요 모티브가 된다.

영화는 ‘가출팸’을 소재로 하고 있고, ‘일탈하는 10대의 사실적인 세계’를 다루는 영화의 계보를 일단은 잇고 있다. 하지만 익숙한 장르 기시감만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 ‘곡성’을 보고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동안 ‘이 영화는 무슨 영화지?’하는 의문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여기에 이 영화의 미덕이 있다. ‘박화영’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박화영에서 시작해 박화영으로 끝이 난다.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서사구조가 약하고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도 아니어서 인물만 남기도 하고 실은 이 캐릭터가 너무 강력하다. 그래서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리얼리즘영화 보다는 캐릭터 영화로 읽을 때 더 흥미롭다.

영화 ‘박화영’ 스틸/사진제공=명필름랩

영화 ‘박화영’ 스틸/사진제공=명필름랩

박화영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엄마로 보이는 사람에게서 버림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도 있다. 화영은 뚱뚱하고 못생겼고 순종적이지 않고 명석하거나 재능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이는 합리적인 추측이 아니다, 단지 짐작이다. 화영은 와해된 혹은 상실된 가족을 대신한 허름한 집에 ‘가출팸’의 유사가족을 만들고 그들의 ‘엄마’를 자청한다. 계속해서 그들에게 가능한 모든 것을 제공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 받고 싶지만 실상 줄 수 있는 것이란 양은냄비에 끓인 인스턴트 라면, 쓰레기장과 다름없는 혼숙의 허름한 방, 갈취한 약간의 돈 정도다.

최소한의 생존이 위태로운 화영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극빈층에 가깝지만 여고생, 청소년, 소녀,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못한 결핍을 채우기 위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 그 뒤에 돌아오는 상대의 기만을 유머나 긍정의 환상으로 전환하는 것은 화영의 특기다. 포스터를 장식한 유쾌한 대사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는 화영의 강렬하고 원초적 욕망이기도 한 존재에 대한 인정욕구가 들어있는 쓸쓸한 대사다.
화영은 이 세계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때문에 대신 매를 맞고 분노의 쓰레기통이 되고 복수를 사주받고 심지어는 살인사건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또래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지불하는 혼신을 다한 ‘열정페이’인 셈이다.

영화 ‘박화영’ 스틸/사진제공=명필름랩

영화 ‘박화영’ 스틸/사진제공=명필름랩

영화가 끝나면 소외된 10대보다는 소외된 박화영이, 폭력에 내몰린 가출 청소년보다는 폭력에 내몰린 박화영에 대한 심상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영화 내부의 세계에서 그녀의 구원은 아주 불가능해 보이므로 그녀를 연기한 배우의 신인상 수상 같은 것을 응원하게 된다. 영화는 객관적으로 보자면 상업영화 시장에서 존재를 증명하기에 미약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이게 ‘박화영’과 박화영의 힘이다.

‘너무 위로되지도 않게, 너무 냉정하지도 않게’는 박화영을 연기한 배우 김가희가 폭력 장면을 만들 때 카메라 밖에서 상대 배우와의 관계에 대해 한 말이기도 하고, 이 영화와 현실 세계 혹은 감독과 관객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다. 이 거리에서만 영화는 발화한다. 이 이야기가 익히 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라거나 계급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있었던 오래된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는 것은 혹시 내가 박화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안간힘을 쓰며 세계에 속하기 위해 가진 최대치의 열정페이를 지불 할 수밖에 없는 을(乙)들의 행복 회로에 관한 이야기 혹은 행복회로를 정지하고 박화영의 구원을 궁리하며 나 자신의 진짜 행복 회로를 작동시키는 이야기 ‘박화영’을 추천한다.

정지혜(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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