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돼지해에 태어나면 복이 많다는 속설 때문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상 1971년생(돼지띠) 인구가 94만4179명으로 가장 많다고 한다. 그해 태어난 아이는 102만4773명이었다. 이 가운데 92.1%가 생존해 올해 47세를 맞았다.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집 동갑내기들이 1971년생이다.

이들은 초등학교(국민학교)에 입학해서도 교실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썼다. 한 반에 60여 명이 복작거리는 ‘콩나물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책상을 두 명이 함께 쓰면서 가운데 선을 그어 놓고 영역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아홉 살 때 컬러TV를 처음 구경했다. 아버지 세대가 중동에서 땀 흘려 번 돈으로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 보며 외국 문화를 동경했다. 프랑스 배우 소피 마르소 사진을 품고 다니며 자랑했다. 고교 1학년 때인 1987년에는 민주화 바람이 불어 매일 등하굣길에 최루탄 가스를 마셨다.

대학입시 경쟁률도 최고로 높았다. 1990학년도 학력고사 경쟁률은 전기대 4.57 대 1, 후기대 4.6 대 1이었다. ‘선(先)지원 후(後)시험제’가 도입됐지만 온가족이 동원된 막판 눈치작전은 여전했다. 부모와 친척까지 나서서 각자 맡은 대학의 마감 직전 경쟁률을 보고 지원자가 제일 적은 학과에 원서를 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서는 호프 문화와 노래방 문화를 경험했다. 그때 ‘서태지 세대’ ‘X세대’ ‘오렌지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연평균 7~9%의 경제성장률이 지속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1997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어렵사리 취업한 뒤에도 돈이 없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 직장에서 자리를 잡는가 했더니 금세 ‘삼팔선’(38세가 퇴직을 하는 마지노선) ‘사오정’(45세 정년)이라는 유행어의 주인공이 됐다. 이제는 부장급 직책으로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자녀 교육과 아파트 대출금 걱정 등으로 밤잠을 설친다.

이들이 한국 나이로 60세가 되는 2030년 우리나라 인구는 5216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기대수명은 늘어 '100세 시대'를 맞을 전망이다.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세대. 아직은 현실이 녹록지 않다. 아래로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위로는 부모를 봉양해야 하고, 자신의 노후 준비까지 해야 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꿈은 그것을 품는 사람에게 응답한다”고 했다. 격변의 역사를 잘 헤쳐온 1971년생 돼지띠들이여, 힘 내시라. 그대들의 미래에 아름다운 꽃길이 펼쳐지길 응원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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