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태 롯데백화점 사장의 '수평 리더십'

실패해도 문책 대신 인사 가점
美 아마존 본사서 경영 혁신 체험
직원들과 카톡으로 소통하며
현장 아이디어는 곧바로 반영
非생산적 의전·격식도 확 줄여

'롯데다움'으로 승부한다
본점에 국내 첫 SNS 상설 매장
아동 전문 서점 등 매장 차별화
전국 혁신점포 6곳엔 디지털 결합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강희태 롯데백화점 사장은 지난 5월 말 미국 시애틀 아마존 본사를 다녀왔다. 뉴욕, 보스턴 등에서 해외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한 투자설명회(NDR) 일정을 소화한 직후였다. 그는 ‘아마존 혁신’을 뒷받침하는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을 눈여겨봤다. 세계 최대 e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에선 상사의 ‘지시’보다 중요한 게 ‘경영 원칙’이다. 원칙에서 벗어나면 상사 지시를 거부하는 것도 허용된다.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매년 4월 연례서한을 통해 경영원칙을 공개한다. 올해는 ‘고객의 기대치를 충족하려면 높은 스탠더드를 가져야 한다’였다.

강 사장은 ‘이거다’ 싶었다. 롯데백화점에 가장 필요한 것도 ‘원칙’이란 생각을 했다. 소비 트렌드가 급격히 변하는데 위에서 원칙 없이 지시하고 아랫사람은 따르는 식으론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람이 아닌, 시스템으로 자발적으로 돌아가는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봤다. 지난달 13일 ‘롯데백화점의 7가지 일하는 원칙’을 사내 게시판에 공유한 이유다.

그는 업무 방향을 설정하고,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7가지 원칙’을 근거로 하자고 강조했다. 7가지 원칙은 △생각과 판단의 기준점은 고객이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 △리스크(위험)가 있어도 도전한다 △업무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관행과 낭비를 버리고 스마트하게 일한다 △팀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는다 등이다. 강 사장은 “백화점 문만 열면 자연스럽게 매출이 나오던 시대는 끝났다”며 “살아남으려면 젊은 직원들이 주도해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하고, 그러려면 판단 근거가 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 목소리 경청하는 합리적 리더

강 사장이 작년 3월 롯데백화점 대표이사로 취임했을 때 ‘롯데답지 않은 CEO’란 평가가 많았다. 전임자들은 대부분 ‘카리스마형 리더’였다. 백화점 성장기에 필요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강 사장은 ‘합리적인 리더’란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직원들과 소통하는 것을 중시하고, 남의 말도 잘 듣는다. 30년 넘게 롯데백화점 현장을 돈 ‘현장통’이지만 자기 의견을 잘 고집하지 않는다.

의전이나 격식도 확 줄였다. 임원뿐 아니라 일반 직원들도 강 사장에게 ‘카톡’을 보낸다. 강 사장에게 보고할 게 있으면 서류 작업을 거치지 않고 사내 메신저만 하는 임원도 상당수다. ‘수직적 조직 문화’가 강한 롯데백화점에선 과거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메신저가 더 편하다”는 강 사장은 임원 회의 때도 “내가 와도 제발 일어나지 말라”고 한다.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협력사를 방문했을 때다. 올 가을·겨울 시즌을 겨냥한 스카프 신제품 출시 행사가 열렸다. 이런 행사에선 협력사 대표의 얘기만 듣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강 사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협력사 모든 부서를 돌아보고 직원들을 일일이 만났다. 현장에서 ‘건의’도 받았다. 디자이너들은 “백화점 판매 공간이 협소해 실험적인 디자인 제품을 선보일 기회가 적다”고 하소연했다. 강 사장은 곧바로 “백화점 시즌 개편 때 신제품 공간을 더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식으로 강 사장은 현장의 아이디어를 곧바로 반영하곤 했다.

롯데백화점은 작년 9월 미니 백화점 형태인 ‘엘큐브’ 홍대점 3층에 가상현실(VR) 체험관을 열었다. 승마 경주와 놀이기구 체험 등 6가지 VR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기존에 옷을 판매하던 공간을 바꿨다.

이 제안은 30대인 경미령 엘큐브 홍대점장이 낸 것이었다. 경 점장은 홍대 상권을 분석한 뒤 “3층 이상에서 옷은 절대 안 팔린다”고 주장했다. 내부에선 “그렇다고 백화점에서 웬 VR 체험관을 여느냐”며 반대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강 사장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만든 게 엘큐브인데 기존 틀대로 생각할 필요 없다”며 경 점장 손을 들어줬다. 이후 VR관은 ‘히트 상품’이 됐다. 롯데백화점은 VR관을 엘큐브뿐만 아니라 기존 백화점 점포에도 넣기로 했다. 오는 10일 롯데백화점 건대스타시티점에 ‘롯데 몬스터 VR’이란 이름의 VR 테마파크가 생긴다.
수평적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셀 조직’이란 것도 만들었다. 사내 공모를 통해 누구든 사업을 제안하고 직접 할 수 있게 했다. 작년 11월 말 구성된 셀 조직 ‘멀티채널 네트워크 팀’은 입사 5년차 한재연 대리가 팀장을 맡고 있다. 그는 팀원 두 명과 함께 롯데백화점 소식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10~20대 젊은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일을 맡고 있다. 강 사장은 인사팀에 “직원들이 새로운 시도를 했을 땐 실패의 책임을 일절 묻지 말고, 인사에서 가점을 많이 주라”고 지시했다.

SNS 인플루언서 매장 등 혁신 시도

강 사장은 요즘 ‘변화’와 ‘혁신’을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백화점 매출이 계속 감소하고 있어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오프라인 백화점은 사양산업 취급을 받고 있다. 백화점 점포 수는 계속 줄고, 온라인과 전문 몰 등으로 소비자는 분산됐다.

강 사장은 우선 ‘롯데다움’을 찾자고 강조한다. 전통적인 백화점의 틀에서 벗어나 롯데만의 차별화된 매장 구성과 상품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 젊은 직원들이 혁신을 주도해 줄 것을 당부한다.

롯데백화점은 작년 말 서울 소공동 본점 2층에 ‘아미마켓’이란 매장을 열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를 모아 판매한다. 국내 백화점 중 최초의 SNS 브랜드 상설 매장이었다. ‘듀이듀이’ ‘핀블랙’ ‘갈롱드블랑’ 등 주로 여성 SNS 인플루언서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요즘 20~30대 젊은 층은 획일적인 백화점 브랜드 상품보다 SNS 인플루언서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직원들 건의를 받아들였다.

아이들이 책을 맘껏 보고 느낄 수 있게 한 아동 전문 서점 ‘동심서당’, 체형에 꼭 맞는 양복을 맞춰주는 ‘타카오카 컬렉션’, 키덜트 전문 매장 ‘하비플레이스 토비즈’, 실내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레전드 히어로즈’ 등의 점포도 새롭게 시도했다.

강 사장은 올 들어 관악, 분당, 부평, 인천, 김포공항, 센텀시티 등 6곳을 ‘혁신 점포’로 지정했다. 이들 점포의 키워드는 디지털이다. 기존 사람이 하던 것을 자동화했다. 사은품 증정은 무인 키오스크가 직원을 대신한다. 우편으로 배송했던 광고물은 모바일로 대체했다. 차량 유도 시스템을 도입해 주차 직원을 줄이고, 물품 보관과 유모차 대여 등도 무인화했다.

■강희태 사장 프로필

△1959년 서울 출생
△1987년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7년 롯데백화점 입사
△2004년 롯데백화점 잡화여성부문장
△2007년 롯데백화점 잠실점장
△2008년 롯데백화점 본점장
△2010년 롯데백화점 영남지역장
△2011년 롯데백화점 상품본부장
△2014년 롯데백화점 차이나사업부문장
△2017년 롯데백화점 대표이사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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