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차이나 포비아

삼성·LG 위협하는 中가전

내수시장서 쌓은 노하우로
가성비 내세워 해외 진출

품질·기술력도 빠르게 성장
생활가전 시장까지 넘봐
경기 일산에 사는 함모씨(46)는 최근 코스트코 일산점을 방문했다. 중국의 TV 브랜드인 TCL의 55인치 LCD TV를 보고 구입했다. 초고화질(UHD) TV 최신 제품인데 판매 가격은 73만7500원에 불과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동일한 성능의 삼성전자(92만원)와 LG전자(94만6000원) TV보다 20% 이상 저렴했다. 삼성의 QLED TV, LG의 OLED TV 등 프리미엄 제품과 비교하니 반값에도 못 미쳤다. 함씨는 “TV는 과거와 달리 신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 굳이 삼성, LG의 고가 브랜드 제품을 살 필요가 없다”며 “5~6년 쓰다 고장 나면 새 제품으로 갈아타는 게 이득”이라고 말했다.

중국 제조업체들이 TV, 냉장고, 세탁기, 공기청정기, 청소기와 같은 가전제품 시장에서 삼성, LG를 맹추격하고 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바탕으로 중국 내수 시장을 석권한 뒤 기술과 자본을 쌓아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이다. 삼성, LG 등 국내 업체들이 프리미엄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품질과 기술력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어 향후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6일 IHS마킷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1분기 TV 시장 점유율은 19.2%로 세계 1위를 고수했다. 하지만 중국 TV 시장의 점유율은 2.2%에 그쳤다. 2014년 5.1%에 달했던 점유율이 불과 4년 만에 반토막이 됐다. 삼성의 빈자리를 채운 건 하이센스(14.8%), 스카이워스(13.8%), TCL(12.6%) 등 중화권 제조업체다. 이들 8개 중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 84%에 달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한 번 무너진 중국의 유통 판매망을 복원하기가 쉽지 않다”며 “삼성도 사실상 포기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내수 시장에서 기술과 자본을 축적한 중국 TV 업체들은 가성비를 내세워 해외 무대로 뻗어나가고 있다. 화웨이와 샤오미, 비야디(BYD) 등 중국의 스마트폰과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해왔던 것과 동일한 전략이다.
TCL의 세계 TV 시장 점유율(수량 기준)은 △2016년 5.8% △2017년 7.1% △2018년 1분기 7.9% 등으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중국 제조업체들의 세계 TV 시장 점유율은 29.7%로 한국(32.4%)을 턱밑까지 쫓아왔다. 750달러 이하 중저가 시장에선 올 1분기 중국의 시장 점유율(34.5%)이 한국(24.4%)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생활가전 시장도 중국 업체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삼성, LG는 중저가 시장에선 이미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과 LG가 수년간 공을 들여 개발해 출시한 혁신 제품들이 해가 바뀌기도 전에 중국 시장에서 똑같은 모델로 출시되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LG 모두 프리미엄 제품 시장에 집중해 중국 제품과 차별화한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며 “하지만 가전제품은 기술로 차별화하는 게 쉽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