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차이나 포비아
(2) 중국의 '디스플레이 굴기'

중국은 어떻게 한국 LCD를 추월했나

부메랑 된 하이디스 매각
손목시계 액정 만들던 BOE, 현대전자 LCD 인수로 발판
정부·은행·지자체 삼각지원…경쟁사 힘들때 공격적 투자

시장원리? 물량으로 승부
수요·공급 무시한 물량 공세…원가 수준 '가격 후려치기'
경쟁업체 '枯死 작전' 성공

韓 '脫LCD'…OLED로 승부
지난 2분기 삼성전자는 1년 동안 이어온 실적 ‘신기록 행진’을 멈췄다. 반도체 부문에서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음에도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사업 부진이 실적을 갉아먹었다. 디스플레이 부문 영업이익은 1400억원이었다. 전년 동기(1조7100억원) 대비 91.81% 하락한 수치다. LG디스플레이 상황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올 1분기 98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6년 만에 적자 전환한 데 이어 2분기에는 손실 규모가 228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김상돈 LG디스플레이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는 “안정을 찾길 기대했던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가격이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가격 인하 여파로 예상보다 빠르고 가파르게 떨어졌다”고 실적 부진 배경을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 제친 BOE의 전략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두 회사가 이렇게 극적으로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굴기’가 이 정도로 빠르게 진행될지 예측하지 못한 탓이다. 그 중심에는 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무섭게 성장한 BOE, CSOT 등 중국계 패널업체가 있다. 이들이 공격적인 시설 투자를 바탕으로 LCD 패널을 시장에 쏟아내면서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40인치 TV용 LCD 패널 평균 가격은 작년 1~5월 141달러를 유지하다 점차 떨어져 지난달 기준 절반에 가까운 75달러로 추락했다. 지난해 3분기 BOE는 LG디스플레이를 제치고 대형 LCD 패널 생산량 1위 자리에 올라섰다.

중국 업체들이 한국 LCD산업을 추월한 배경은 무엇일까. BOE를 들여다보면 중국 디스플레이산업 성장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1993년 설립된 BOE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자 손목시계 액정을 생산할 정도의 기술력밖에 보유하지 못했다. 2002년 이 회사에 기회가 왔다. 현대전자 LCD사업부문인 하이디스가 매물로 나오면서다. BOE는 당장 하이디스를 사들이겠다고 나섰다. 한국에서 ‘기술유출 논란’이 일었지만 인수합병(M&A)은 성사됐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BOE는 핵심 기술 4300여 건을 넘겨받은 뒤 하이디스를 부도 처리했다. 핵심 기술뿐만 아니라 하이디스 출신 한국인 기술자들을 빨아들인 BOE는 2005년 5세대 LCD 생산 라인을 가동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력은 일본 대만 한국 업체를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기술이 부족해 쉽사리 대형 투자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반면 기술력을 앞세운 한국 업체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갔다. 2004년 이후부터 5세대, 7세대, 8세대 LCD 생산라인 투자를 주도했던 한국 업체들이 2000년대 후반 일본과 대만을 제치고 선두에 올라선 배경이다.

◆물량 공세로 경쟁자 고사시켜

한국과 일본, 대만이 주도하던 디스플레이 시장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2012년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변화를 맞기 시작했다. 일본 샤프와 재팬디스플레이, 대만 AUO와 이노룩스가 실적 악화로 투자를 크게 줄이면서다. 반면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정부 보조금과 금융권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대표적인 수혜 기업이 BOE다. 재무제표에 기록된 중국 정부의 보조금 규모는 2001년 이후 17년간 84억4300만위안(약 1조4400억원)에 달했다. 2001년 1500만위안 수준이던 정부 보조금은 중국 정부가 ‘전략적 7대 신성장산업’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2012년 9억2600만위안으로 늘어났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는 고려하지 않았다. 공급량을 공격적으로 늘려 가격을 떨어뜨리고, 점유율을 높여 경쟁회사 실적을 악화시키는 ‘고사 작전’을 펼쳤다.

BOE는 올초부터 허페이 공장에서 세계 최초로 10세대 LCD패널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은 최대 8세대 LCD패널까지만 생산한다. BOE 공장 건립 과정에서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금융권은 ‘삼각편대’를 이뤄 전방위 지원에 나섰다. 이 공장을 짓는 데 투자된 460억위안(약 7조8200억원) 중 BOE 자체 자금은 6.5%인 30억위안(약 5100억원)에 불과하다. 허페이시 산하 공기업이 210억위안, 공공투자펀드가 60억위안을 투자했다. 나머지 160억위안은 은행 대출로 충당했다.

BOE는 올 상반기 10세대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하며 물량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원가 수준에 패널을 판매하는 등 ‘가격 후려치기’를 통해 한국 업체가 버틸 수 없는 구조를 형성했다.

◆韓, OLED로 반전 시도

LCD 시장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내줬다고 판단한 국내 디스플레이업계는 ‘탈(脫)LCD 및 OLED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직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부문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08년부터 중소형 OLED 패널에 집중해 전체 매출 중 LCD 의존도를 30%까지 낮췄다. 문제는 BOE의 ‘의지’도 만만찮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2일 “BOE가 애플 아이폰에 OLED 패널을 공급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애플 아이폰의 OLED 패널은 사실상 삼성디스플레이가 독점 공급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2013년부터 TV용 OLED를 생산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하지만 OLED TV 시장이 아직 완전히 개화하지 못해 실적 개선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LG디스플레이는 실적의 90% 이상을 LCD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2분기 실적발표회에서 김 CFO는 “연내 파주 LCD 공장의 OLED 전환 계획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LCD 패권이 중국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되돌릴 수 없음을 인정한 것”(최영산 현대차증권 연구원)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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