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 가는 韓·日 청년

< 표정 밝은 일본 취업준비생들 > 고용 사정이 개선된 일본에선 민간 기업에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참석한 대학 졸업생들이 환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공무원 인기 뚝 떨어진 日

안정보다 도전
"공무원 일만 많고 승진 늦어"
'관료는 일류' 인식 퇴조
도쿄대 출신 합격자 최저


“공무원이 되기보다 벤처기업 등 민간에서 도전해보겠다는 대졸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마쓰모토 오키 마넥스증권 사장)

관료 영향력이 큰 사회로 평가받아온 일본에서 공무원직 인기가 시들고 있다. “정치는 삼류, 관료는 일류”(사쿠라다 다케시 전 게이단렌 회장)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로 공무원 위상이 높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경기 호조로 완전고용 상태가 지속되면서 일본 젊은이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이던 공무원직의 매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6월 일본의 실업률은 2.4%로 25년여 만의 최저 수준이고 구직자 한 명당 일자리 수(유효구인배율)도 1.62개에 달한다. 일자리가 많아지다 보니 답답한 공직 대신 민간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어 도전하겠다는 젊은 층이 증가했다. 청년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공무원직 경쟁률이 하락하는 요인이다.

아사히신문은 3일 “명문대생에게 인기가 높던 고위관료직에 대한 선망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행정고시·외무고시·기술고시를 합친 격인 ‘국가공무원 종합직’시험에는 올해 불과 1만9606명만 지원했다. 1970년 이후 48년 만에 처음으로 지원자 수가 2만 명을 밑돌았다. 인사원 측은 “민간기업이 적극적으로 인재를 채용하고, 대졸자도 공무원보다 민간기업을 선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명문대생의 취업 선호 순위에서도 공무원이 후순위로 떨어지고 있다. 올해 1797명의 합격자 중 일본 최고 명문대인 도쿄대 출신은 329명으로 관련 통계를 취합한 1998년 이후 가장 적었다. 도쿄대 대학신문이 집계한 취직선호 직장에서도 미쓰비시UFJ은행, 액센츄어 등 민간기업이 공무원을 제치고 최상위권을 휩쓸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해 도쿄대 졸업생의 진로를 분석한 결과도 도쿄대 학부 출신의 공무원 취업률은 6%로 20년 전(9%)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도쿄대 법대의 한 학생은 “공무원이 돼봤자 최소 10년간은 허드렛일만 하느라 전문성을 키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위직뿐만 아니라 중·하급 일반직 공무원 인기도 줄어드는 분위기다. 인사원에 따르면 대졸자를 대상으로 하는 올해 국가공무원 일반직 시험에 전년 대비 4.4% 줄어든 3만3582명이 지원했다.

지방공무원 채용 열기도 예전만 못하다. 지난 2일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도 일본 전국 지방자치단체 직원채용 시험 평균경쟁률은 6.5 대 1로 관련 조사를 시작한 199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일본에서 공무원직 인기가 떨어진 데에는 업무량은 과도한 데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 뒤늦은 승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2015년 현재 민간기업의 평균 초과근무시간이 연 154시간인 데 비해 중앙부처 공무원은 평균 연 363시간에 달했다.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이 일반 직장인의 7배가 넘는 100시간에 달하는 사례도 많다. 반면 공무원의 연평균 수입은 600만엔(약 6056만원)으로 민간 기업에 비해 적은 편이다. 여기에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사학 스캔들’ 사태를 거치면서 관료들이 정치인의 스캔들 뒤처리에나 동원된다는 인식도 퍼졌다.
누적된 인사적체로 승진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도 단점이다. 최근 벤처기업으로 이직한 한 30대 여성 전직 공무원은 “일본 중앙행정 부처에서는 과장이 되기 전까진 생산적인 일도, 원하는 정책도 실현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 빈자리 없는 한국 公試 학원 > 취업난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한국에선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서울 노량진의 한 학원에서 열린 9급 공무원 시험 대비 설명회에 수험생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다. /한경DB

공무원시험에 목매는 韓

안정된 공직이 최고
상습 야근·세종시 거주에도
5급 행시 경쟁률 40 대 1
'SKY大' 출신 합격자 62%


“급여도 민간에 비해 적고 미래도 그리 밝지 않습니다. 그래도 언제 망할지 모를 민간기업보다는 훨씬 낫죠.”(사회부처 A초임사무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학생들 사이에서 국가직 5급 공채(옛 행정고시)의 인기는 여전하다. 지난 6월까지 취업자 증가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5개월 연속 10만 명대 이하로 떨어지는 등 민간 일자리가 급감한 영향이 크다. 청년 실업률은 10%에 육박하며, 취업준비생 등을 포함한 사실상 실업률은 22%를 넘는다. 학점 등 ‘스펙’을 관리해도 웬만한 기업 공채 경쟁률이 수백 대 1에 달하는 만큼 SKY 출신들에게도 취업 관문 통과는 ‘하늘의 별 따기’다. 고시 합격 역시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같은 고생이면 차라리 안정적인 공무원을 택하는 게 낫다는 인식도 확산되는 추세다.

법률저널에 따르면 작년 5급 공채 행정직 합격자(275명) 중 서울대 출신 비율은 36.4%(100명)에 달했다.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SKY 출신 합격자를 합산한 비율도 지난해 58.6%에서 62.2%로 늘었다. 전체 5급 공채 1차 시험 경쟁률도 40 대 1이었다. 고시생들이 몰리는 신림동 학원가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1차 시험에 헌법 과목이 도입되면서 경쟁률이 낮아진 것을 감안하면 평년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주요 대학 게시판에는 “중앙부처 공무원은 야근이 많은 데다 세종시에서 일해야 해 장점이 적다”는 내용의 글이 자주 올라온다. 떨어질 위험을 감수하고 최소 3년 이상 공부해야 하는 데다 민간 기업과 비교해 급여가 연 1000만원 이상 낮다는 설명이다. 법학전문대학원 금융공기업 등이 5급 공채 ‘대체재’로 일부 떠오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급 공채가 여전히 인기를 끄는 것은 양질의 민간 일자리가 급감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공무원 조직은 더 커지고 있다. 현 정부는 ‘공무원 수를 늘린다’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따라 2022년까지 공무원 정원을 17만4000명 더 늘리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발표했다.

경기가 침체하면서 민간 기업의 안정성이 갈수록 나빠질 것이라는 인식도 한몫했다. ‘입신양명’보다 직업 안정성이 최우선 고려대상이 됐다는 얘기다. 이 같은 추세는 입법고시 합격자들의 출신 대학 비중을 보면 잘 드러난다.

지난달 발표된 올해 입법고시 합격자 명단에서 서울대 출신 합격자는 전체의 53.3%(8명)에 달했다. 2015년 서울대 출신 합격자 비율(31.3%)에 비해 3년 만에 20%포인트 넘게 올랐다. 대학생들 사이에 입법고시는 중앙 부처 공무원보다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가 낮은 ‘웰빙 고시’로 알려져 있다.

공직 선호도는 높지만 막상 공직에 입문한 이후 만족도는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게 관가의 분위기다. 공직을 택한 공무원들의 ‘이직 러시’는 최근 들어 뚜렷해지고 있다. 인사혁신처가 올해 초 발표한 ‘2017년 공무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기업으로 이직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답한 공무원은 20%에 불과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사무관은 “기재부는 고위공무원단이 되더라도 재취업할 수 있는 산하 기관이 다른 부처에 비해 적은데 이마저도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라며 “서기관이나 부이사관 때 민간에서 좋은 조건으로 불러준다면 당연히 가겠다”고 털어놨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성수영/심은지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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