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심화되는 외국인 매도 공세
정부의 '기업인 때리기'와도 무관치 않아

박해영 증권부 차장

애널리스트 A씨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외국인 투자자 한 명이 갑자기 “당신 회사의 윤리규정(ethics code)을 읽어달라”고 B사 임원에게 요구한 순간이었다. 홍콩의 한 호텔에 모인 참석자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국내 제조업체 B사가 최근 해외 투자자들을 초청해 마련한 기업설명회(non-deal roadshow)에서 벌어진 일이다.

A씨는 “공정거래위원회가 B사를 조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외국인 투자자가 갑자기 윤리규정을 들먹이는 바람에 설명회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며 “내가 주선한 행사여서 B사 임직원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당혹해했다. 그는 “10년가량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해외 투자자들을 상대했는데 외국인들이 요즘처럼 한국 기업을 삐딱하게 쳐다본 적은 없었다”고 착잡해했다.

A씨의 말을 들으면서 그동안 품었던 의문 한 가지가 풀리는 듯했다. 올 들어 증시에서 뚜렷해진 외국인의 매도 공세다. 2016년 유가증권시장에서 11조3359억원, 지난해 6조5818억원 순매수했던 외국인은 올 들어 3조6000억원 넘게 순매도 중이다. 지난 2월 미국 국채금리가 급상승한 것이 1차 원인이었다. 미·중 무역분쟁과 이후 촉발된 환율전쟁으로 신흥국에 대한 불안 심리가 증폭된 것도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이 지갑을 닫은 이유다. 기업 실적 면에서도 주가를 밀어올릴 동력을 찾기 힘든 분위기다. 믿었던 반도체마저 3분기 고점 논란이 제기되면서 흔들리고 있다.

A씨는 “수급과 실적 모두 미덥지 않은 국면에서 정책 리스크까지 불거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업인이 잠재적인 범죄자 비슷한 취급을 받는 나라에서 맘 편히 투자하겠느냐는 얘기다. 법 규정만 잘 지키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어느 대기업은 한 사건으로 6개월 새 검찰의 압수수색을 열 차례나 받았을 정도다. 정부가 작심하고 나선 것 아니냐고 외국인들이 해석하기에 충분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한 펀드매니저는 “감독당국이 느닷없이 회계 처리를 문제 삼는 바람에 바이오주 전체가 ‘투자’ 영역에서 ‘정치’ 영역으로 들어가 버렸다”며 “경제 논리가 안 먹히는 주식을 사는 건 상당한 모험”이라고 답답해했다.

이러니 기관과 개인들이 해외 증시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올해 상반기 국내 투자자들은 10조원 넘게 해외 주식을 사들였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80% 이상 급증했다. 해외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는 제외하고도 이 정도다.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으로 대표되는 기술주들이 주 타깃이다. 이 덕분인지 나스닥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질주하고 있다.

투자처를 해외로 넓히는 것은 바람직한 전략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외국인이 외면하는 한국 증시의 미래를 어둡게 봐서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이달 초엔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배당소득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가 반발이 일자 정부가 서둘러 진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가 기업인은 물론이고 자본시장까지 홀대하는 것 아니냐는 실망감이 증권가에 퍼져 있다. 말 그대로 내우외환(內憂外患) 한국 증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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