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브루잉·웰빙 집밥…신나는 '횰로 라이프'
"취미 생활에 돈 많이 들지만 아깝지 않아요"

미식으로 찾은 '소확행'
맛있는 음식 먹으며 힐링
건강한 식재료로 몸도 튼튼

취미에 아낌없이 투자
스킨스쿠버 위해 매년 동남아行
수백만원 레이싱 장비도 척척

"너무 잘 쓴다~" "결혼 안해?"
주변 지적에 스트레스 받기도

대기업에 다니는 싱글남 진 과장(34)의 취미는 ‘술’이다. 마시는 쪽이 아니라 만드는 쪽이다. 칵테일 정도는 오래전부터 직접 만들었고 최근에는 맥주를 제조하는 ‘홈 브루잉’에 푹 빠졌다. 시중에서 파는 간이 수제맥주 키트로 시작해 지금은 양조 공방에서 전문가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맥주를 담그는 ‘맥덕(맥주와 마니아를 뜻하는 덕후를 합친 신조어)’이 됐다. 퇴근 후 집에서 직접 제조한 맥주를 마시며 스포츠를 보는 게 그의 즐거움이다. 취미 생활을 위해 한 달에 수십만원은 기본이고 100만원 넘게 쓸 때도 있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든다. 진 과장은 “홉을 얼마나 넣는지, 어떤 효모를 넣는지에 따라 맥주 맛이 천차만별”이라며 “만들면서 어떤 맛이 날지 상상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고 말했다.

2030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 ‘욜로족’과 ‘혼족’의 특성을 모두 갖춘 ‘횰로족’ 열풍이 불고 있다. 욜로(YOLO)는 ‘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현재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며 소비하는 태도를 말한다. 혼족은 혼자 사는 사람을 일컫는다. 국내에서 ‘욜로’라는 말이 처음 쓰인 건 2016년 여름이다. 그 흐름이 1인 가구 증가와 만나 횰로 문화를 낳았다. 횰로족이 겪는 고충도 있다. ‘그렇게 노느라 결혼은 언제 하냐’는 핀잔이 대표적이다. 취미생활 씀씀이가 너무 커져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한다. 횰로족 생활을 하는 젊은 직장인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2030 횰로족 대세는 ‘식도락’

횰로족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건 ‘식도락’이다. 은행에서 일하는 와인애호가 박 과장(38)은 지난달 미니 와인셀러(와인 냉장고)를 샀다. 주방에 이미 와인셀러가 있지만 큰맘 먹고 하나 더 장만했다. 올해 입사 10년차를 맞아 스스로에게 선물한 고급 와인 ‘샤토 오브리옹 2009’를 보관하기 위해서다. 한 병에 300만원가량 하는 와인을 사는 데 한 달 월급의 대부분을 썼지만 만족한다. 그는 주말에는 직장인 와인동호회에 나가고 평일 저녁에는 와인으로 ‘혼술’을 하는 등 여가시간 대부분을 와인에 쓴다. 박 과장은 “와인과 관련된 일에 쓰는 돈과 시간은 아깝지 않다”며 “와인만 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없다”고 했다.

큰돈을 들여 ‘혼외식(혼자서 하는 외식)’을 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횰로족도 있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34)가 그런 사례다. 그는 혼자 고깃집에 가서 한우 등심 등을 구워 먹으면서 소주 한 잔을 넘긴다. 김 대리는 “예전에는 남들처럼 같이 밥 먹을 사람을 찾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며 “혼외식을 하면 남 눈치 안 보고 먹는 데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회사 근처에서 점심 혼외식을 하는 ‘고수’들도 있다. 한 증권사에 다니는 문 대리(35)는 1주일에 세 번 이상 점심시간에 혼외식을 한다. 그는 “상사 눈치 안 보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느긋하게 밥 먹다 보면 오전에 쌓인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횰로의 질을 높인 ‘웰빙 횰로’도 인기다. 직접 농사를 짓거나 유기농 식재료를 구입해 ‘집밥’을 해 먹는다. 서울의 한 건설사에 다니는 싱글남 최 차장(39)은 최근 경기 남양주로 이사했다. 그는 집 근처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텃밭을 일군다. 직접 유기농 채소를 가꿔 요리해 먹기 위해서다. 경주에서 혼자 살며 공공기관에 다니는 하 차장(34)은 1주일에 한두 번 직접 장을 본 식재료로 요리를 해 먹는다. 이제는 요리 학원을 다닐 정도로 음식 만드는 일에 빠졌다. 그는 “혼자 살면서 요리를 하면 사먹을 때보다 돈이 오히려 많이 들지만 건강에도 좋고 만족감이 크다”고 했다.

사회의 낯선 시각에 곤란 겪기도

‘먹는 횰로’가 아니라 ‘하는 횰로’를 즐기는 직장인도 많다. 전자회사에 다니는 윤 과장(39)은 스킨스쿠버가 취미인 횰로족이다. 그는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제주도로 스킨스쿠버를 하러 가고 1년에 한 번은 동남아시아 등 외국으로 떠난다. 한 번 다닐 때마다 많게는 수백만원이 들기도 하지만 스킨스쿠버가 ‘인생 사는 낙’이라 아깝지 않다. 대기업에 전자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의 우 팀장(36)은 자동차 마니아다. 그는 버는 돈의 대부분을 자동차에 쓴다. 그는 현재 연봉보다 비싼 고급 수입차 BMW M4를 타고 다닌다. 이 차를 타고 강원도에 있는 인제스피디움을 종종 방문해 서킷(경주장)을 달린다. 집에서도 게임 레이싱을 즐길 수 있도록 수백만원을 들여 장비를 갖췄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 대리(28)는 최근 주말을 맞아 1박2일 일정으로 혼자 도쿄 여행을 다녀왔다. ‘애니메이션 성지’로 불리는 아키하바라에 가서 원피스와 건담 피규어를 사는 게 여행의 주요 목적 중 하나였다. 이 대리가 사는 원룸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피규어로 꽉 찬 장식장도 있다. 피규어 하나 가격이 비싼 건 수백만원에 달한다. 그는 “희귀한 피규어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랑할 때 느끼는 뿌듯함 때문에 구매를 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출판사에 다니는 김 대리(32)는 취미로 도예를 하다가 실력이 전문가급으로 높아졌다. 인터넷에 직접 만든 도자기 사진을 올리자 “사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들어와 아예 정식 판매 사이트를 개설했다.

횰로족 생활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횰로족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 따가울 때도 많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허 대리(31)는 요새 직장 선배들의 재테크 훈계를 자주 듣는다. 점심시간이면 선배들은 “허 대리는 솔로인데 돈은 어디다 쓰냐”는 질문을 자주 한다. 적당히 대답하면 선배들은 굳이 묻지도 않은 충고를 이것저것 하며 사생활에 간섭한다. 출판사에 다니는 이 과장은 영화를 보는 게 취미다. 좌석당 가격이 3만~4만원인 고급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싶지만 이런 자리는 대부분 두 좌석을 함께 판다. 그는 “고급 영화관에도 1인 좌석을 마련하면 좋겠다”며 “아직 우리 사회가 횰로족에겐 불편한 구석이 많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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